운무에 둘러 싸인 구비 진 골짜기는 선계의 운치 선사

내연골 최고의 경관인 선일대 모습.

장마와 무더위가 교차하는 계절에 근교에서 힐링하고 즐길 수 있는 자연이 가까이 있어도 일상의 상실(喪失)로 망설여지는 게 요즈음 세태(世態)다.

그렇지만 마냥 무덥고 갑갑한 실내보다는 녹색의 향연이 펼쳐지는 산과 계곡을 찾아 마음을 치유하고 다스리는 게 나을듯하여 시원한 계곡이 있는 내연산으로 간다. 포항지역의 진산(鎭山)이라 일컫는 ‘내연산(內延山)’은 본래 이름은 ‘종남산(終南山)’이라 불렀는데 신라 진성여왕이 견훤의 난을 피해 이곳으로 몸을 숨겼다 하여 ‘내연(內延)’으로 고쳐 불렀다고 전한다.

내연산은 내연골 또는 청하골이라 불리는 계곡을 사이에 두고 왼쪽의 우척봉, 삿갓봉. 매봉과 오른쪽 문수봉, 삼지봉, 향로봉 등 6개 봉우리를 통틀어 내연산이라 부르며 최고봉은 930m의 향로봉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모든 일상을 바꿔 놓았지만 그래도 자연에 대한 아쉬움은 남아있어 조심스럽게 도시를 벗어나 자연의 품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산객들이 조금씩 늘어나는 주말, 비 소식을 뒤로한 채 내연골 탐방에 나선다. 내연산 품속에 싸인 보경사(寶鏡寺) 일주문을 들어서자마자 짙은 소나무 향이 전신을 감싸며 천년고찰 보경사가 여느 때보다 반갑게 맞아준다.

신라 진평왕 25년(602년)에 중국 진나라를 유학하고 온 지명대사가 중국에서 받은 팔면보경(八面寶鏡)을 동해안 내연산 아래 큰 연못에 묻고 그 위에 금당(불당)을 지으면 왜구의 침입을 막을 수 있고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다고 왕에게 진언하여 창건하고 보경사(寶鏡寺)라 이름하였다고 전한다. 사찰 주위의 울창한 장송(長松)들이 이곳 지명이 송라(松羅:소나무가 많은 고장) 임을 말해주고 절집 앞에서 시작하는 내연골의 깊은 계곡과 열두폭포가 말하는 비경(秘境)이 함께 어울려 더욱 신비로움을 더한다.

이미 많이 알려진 명승지인지라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지만 장마철이라 계곡의 수량이 늘어나 흐르는 계곡 물이 힘차고 풍부해 보는 이가 감탄 한다.

열두폭포의 첫 만남인 제1폭, 상생폭의 평화로운 모습.

높은 소나무 숲길을 따라 20여 분 계곡을 오르면 문수봉 갈림길이 나오고 조금 더 올라 만나는 첫 폭포가 제1폭포인 상생폭이다.

두 갈래 물줄기가 힘차게 내리는 폭포라 ‘쌍폭(?瀑)’이라 부르기도 하며 폭포앞 병풍암 직벽에서 암벽등반 초심자들이 훈련하는 곳으로 바위타기를 하던 이들에게는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다. 내연골 12폭포의 시작과 함께 기화대(妓花臺)라 이름 지은 깎아지른 암벽에 울창한 소나무 절경들이 선계(仙界)의 세계로 안내한다. 맑은 계곡물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며 흐릿한 운무에 가린 산그림이 더욱 신비로움을 더하며 오르내리는 산객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만든다.

제2폭인 보현폭이 수줍은 듯 얼굴을 내민다.
제3폭 삼보폭포의 모습은 볼수없고 입간판만 산객을 맞는다.

비경 속 계곡에 수줍은 듯 얼굴을 잘 내밀지 않는 보현폭(제2폭)과 삼보폭(제3폭)이 나뭇가지 사이로 언뜻 스치듯 보이고 아래로 흐르는 물속에 작은 돌멩이들이 재잘대는 듯 한가로운 모습이 연출되는 사이 오른쪽 숲 속에서 불현듯 독경 소리가 천상(天上)의 울림처럼 퍼져 나온다.

산길 옆 작은 암자인 보현암(普賢庵)에서 들려오는 염불소리에 올라온 피로가 달아나고 평화로움이 찾아든다. 절집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소금강전망대까지 400m 남았고 곧장 600m를 더 가면 연산폭에 닿는다고 안내한다.

까마득한 계곡 아래 힘찬 물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잠룡폭(제4폭)이 멀리 보이고 한 구비 오름짓이 끝날 무렵 시야가 트이고 너른 소(沼) 가장자리에 탐방객들이 삼삼오오 비경을 즐기며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내려서면 선일대와 은폭으로 가는 콘크리트 다리(堡)가 있고 왼쪽으로 너른 폭의 물줄기가 아래로 내리꽂힌다. 제5폭인 무풍폭이다.

올라온 좌측 높은 직벽이 내연골에서 가장 이름난 선일대(仙逸臺)다.

수직암벽이 가히 장관을 이루고 그 맨 꼭대기에 정자를 지어 탐방객을 유혹한다. 짙푸른 소나무와 높은 바위벽이 만들어 내는 그림은 선경(仙境)에서나 볼 일이다. 무풍폭위 너른 소를 만드는 관음폭포(제6폭)의 굵은 두 줄기 물이 기암절벽의 비하대(飛下臺) 아래 잔잔한 물결로 속살을 내비치는 절경을 만든다. 어떤 풍화작용인지 지각변동인지 알 수 없지만 비하대와 관음폭 일대에 기이한 동굴현상의 모양이 신(神)이 아니면 빚을 수 없는 신령스런 풍광을 보이는 곳으로 여기까지 올라온 탐방객이 감탄을 자아내는 내연골 최고의 비경을 보여준다. 관음폭 위에 있는 구름다리를 건너면 내연골 열두폭포 중 가장 크고 웅장한 폭포가 있다.

장엄하게 내리꽂는 제7폭 연산폭포.

일곱 번째 폭포인 연산폭이 그것이다. 낙차가 가히 30-40m는 될 물줄기에서 내리꽂는 폭포를 보노라면 그간 어렵고 힘든 일상이 한꺼번에 씻겨 내려가는 시원함과 동시에 가슴 한가운데를 뚫고 솟구치는 에너지를 느낀다. 내연산의 기(氣)가 여기 이 연산폭 물줄기에 모여 보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자아내게 하는데 주저할 이유가 없다. 산을 업(業)삼아 다니는 필자로서는 오랫동안 여기에서 산을 배우고 익혔던 탓에 언제 보아도 정겹고 푸근한 어머니의 품 같은 곳이기도 하다. 연산폭을 볼 때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폭포 가까이에 내려가 기념 촬영하는 탐방객들이 너무나 안쓰럽고 위험한데 안전시설이나 방지대책이 없어 더욱 안타깝다. 여러 해 동안 이곳에서 낙상사고가 일어나 생명을 잃는 경우도 있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지며 필자의 개인 생각이지만 구름다리를 없애고 조금 멀리서 연산폭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를 설치하는 게 안전과 환경보존에 더 나은 것이라 생각해 본다.

연산폭 오른쪽 벼랑이 학소대(鶴巢臺)라 일컬으며 옛날 자연을 즐기던 관리나 문인들이 이름을 새기며 절경을 즐겼다는 흔적이 남아 있고 조선후기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의 대가인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9)이 청하 현감으로 있으면서 이곳 내연산의 절경에 감탄하고 그린 그림이 진경산수화의 시초가 되었다는 설명이 있듯이 겸재가 청하에서 그린 다섯 점의 작품인 청하읍성도, 내연산삼용추도1.2, 내연산폭포, 고사의송관란도 중 대작으로 꼽히는 내연산삼용추도가 잠룡폭, 관음폭, 연산폭을 그린 것으로 이곳이 겸재의 진경산수화 발현지였다고 알려져 더욱 내연골의 진가(眞價)를 알 수 있다. 또한 우리 산꾼들이 본격적인 암벽훈련을 하는 비하대 암장 맨 꼭대기에 있는 수 백 년이 넘는 노송(老松)이 바로 고사의송관란도에 나오는 소나무가 바로 이 노송이라는 점에서 더욱 감회가 깊다.

무풍폭 위로 나 있는 데크 계단을 가파르게 오르면 비하대 정수리에 있는 노송을 볼 수 있고 좌측으로 난 나무계단을 250m 정도 힘들게 오르면 선일대 정자가 나온다. 정자에서 바라보는 내연골 골짜기가 구비구비 휘돌아 보경사쪽으로 이어지고 계곡 양측 절벽들이 검푸른 소나무와 운무에 싸여 신비를 더하고 선계(仙界)의 운치가 느껴지는 듯 절경에 취한다. 선일대 정자를 내려와 좌측 편한 계곡길을 따라가면 숨어 지내는 여성처럼 수줍은 듯 모습을 잘 보이지 않는 은폭(제8폭)이 위용을 자랑하고 향로봉 방향으로 난 계곡을 따라 오르면 제9·10폭포인 복호1폭, 복호2폭이 있고 잘 알려지지 않은 제11폭 실폭과 마지막 제12폭인 시명폭이 나온다. 여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대부분 탐방객들은 연산폭을 보고는 발길을 돌리는 게 대다수이지만 내연골의 비경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선일대 맞은편 벼랑 위에 설치된 소금강전망대 스카이워크가 아찔하게 보인다.

연산폭에서 뒤돌아 나오며 보현암 좌측 데크계단을 따라 400m를 더 오르면 소금강전망대가 나온다. 몇 해 전에 새롭게 만들어진 스카이워크(Skywalk) 전망대로 맞은편 선일대와 비하대의 절경을 한눈에 볼 수 있어 내연골 최고의 뷰(View)가 펼쳐진다. 운무에 가린 선일대 일대가 중국의 장가계(張家界)를 닮았다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내연골 자체의 경관이 금강산을 빼 박았다 하여 이곳을 소금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설명이 더욱 설득력이 있을 정도로 전망대에서 보는 경치가 일품이다. 눈이라도 내리는 겨울이면 더욱 진한 운치가 있어 볼수록 매력이 넘치는 곳이다.

운무에 싸인 내연골이 신비로운 모습으로 다가선다.

전망대를 돌아 내려 오면서 보현암에서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스님께서 내어놓은 믹서커피의 달콤함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보경사로 내려선다. 경내로 들어가기 전 우측 솔숲에 있는 ‘한흑구문학비’가 있는 곳에서 잠시 흑구(黑鷗) 한세광(韓世光) 선생의 문학세계를 더듬으며 이곳에 문학비를 세운 청전(靑田) 서상은 전 영일군수와 포항지역 문인들의 애틋함을 다시 한 번 음미하며 보경사 해탈문을 나선다. 빼어난 명승지를 간직한 내연산을 뒤돌아보니 낮게 깔린 구름과 함께 신선의 세계인 양 아득하게 보인다.

이제껏 내리지 않던 빗방울이 떠나는 산객을 배웅이나 하듯 조용히 어깨에 와 닿는 7월의 여름날, ‘걸어서 자연 속으로’의 아홉 번째 이야기 ‘내연산과 12폭포’의 스토리를 마감할 수 있어 다행이다. 

글.사진=김유복 경북산악연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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