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 향기가 닳아서 흐리다
어제는 찔레꽃과 뻐꾸기 울음이 이루는 각을 보았다
그리움은 하얀 표정을 봄볕에 부비며 찔레 순처럼 왔다


가장 먼 이름 앞으로 몇 개의 형용사가 지나갔다
어떤 질문으로도 각도를 잴 수 없어서
자주 하양을 만지작거렸다
 

찔레는 여전히 찔레가 되고 있었고
스무 살을 오래 걸었지만 가시처럼 찔러 댔다
떠나는 봄밤이 각의 크기만큼 흔들렸다


뻐억꾹 울음이 달라붙는 저 각이 자꾸 슬퍼 보였다
송홧가루처럼 목이 말랐다
각에서 들려오는 목마름은 길었다
 

온몸에 각을 꽂고 찔레 길을 걸었다
찔레꽃이 피어 있는 내내 가슴이 따끔거렸다

봄에 우는 사람이 많았다

 

<감상> 모든 사물의 몸에는 각(角)을 지니고 있다. 찔레의 각은 향기와 하양이고, 뻐꾸기는 울음이고, 나는 그리움과 상처의 각을 지닌다. 뻐꾸기 울음과 찔레 향기, 송홧가루와 매화 마름, 찔레 순과 사슴의 뿔은 서로 각을 잘 맞출 수 있을 것 같다. 그리움과 상처가 깊은 사람은 각을 잘 맞추지 못하고 울음과 같이 살아갈 것이다. 살면서 각이 잘 맞은 적이 몇 번이 있었던가. 사회에 나가 사람 사이에, 가족 사이에, 연인 사이에 각이 클수록 자주 삐걱거렸다. 서로 각을 잘 맞추려면 뾰족한 부분을 둥글게 깎아 보면 어떨까.(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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