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도시 발전 궤 같이 한 51년 내공 가득 자전거 인생

삼천리 자건거 포항 죽도점 정진영 대표가 인터뷰를 앞두고 운영하는 매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몇 평 되지 않는 가게에는 각종 자전거가 천장에 걸려 있거나 바닥에 전시돼 있다.이은성 기자 sky@kyongbuk.com

자전거는 사람의 힘으로 페달을 굴려 두 바퀴로 가는 이동 수단이다.

하지만 에너지 효율이 가장 뛰어나다는 찬사를 들으며 ‘인류 10대 발명품’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누구나 어린 시절 생일 선물로 받길 손꼽으며 꿈을 꿨고, 보조 바퀴를 떼어내고 처음으로 스스로 균형을 잡은 순간을 잊지 못한다.

젊을 때는 사이클이나 MTB(산악용 자전거)에 빠지기도 하고, 노년에는 손자를 태우고 나가는 모습도 그려진다.

자전거는 이렇듯 한 사람의 일생에서도 의미가 적지 않지만, 레저 붐·녹색 성장 등 산업 발전 및 사회·경제적 분위기와도 바퀴와 체인처럼 연관돼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19에 따른 언택트(비대면) 운동이 주목받으며 전기 자전거가 인기를 끈다.

급변하는 시대 흐름 속 ‘자전거방’으로 불렸던 가게는 빠르게 사라지면서 찾아보기 힘들어 지고 있다.

그래서 터줏대감처럼 포항의 오랜 중심 오거리를 반백 년 훌쩍 넘게 한자리를 지키는 자전거 수리 명인 정진영(64) 삼천리 자전거 죽도점 대표의 존재가 더욱 소중하다.

몇 평 되지 않는 가게에는 각종 자전거가 천장에 걸려있거나 바닥에 전시돼 있다. 좁은 공간서 전표를 정리하면서 수시로 고장 난 자전거 상태를 직원 2명과 함께 살피고 새 자전거를 설명하는 모습이 정겹다.

포항시 남구 장기면 대진리에서 태어난 정 대표는 5남 1녀 중 막내.

중학교에 올라간 1969년부터 스무 살 터울 큰 형님이 운영하는 자전거가게서 수리일을 돕기 시작, 올해로 51년째 자전거와 함께다.

1962년께로 기억하는, 가게가 문은 연 이후 지금까지 유지되는 곳은 이 곳 뿐이라며 포항서 가장 오래된 자전거점으로 정 대표는 자부하고 있다.

그는 “어린 시절 가정에 보탬이 되고 형을 돕기 위해 친구들이 놀자고 해도 가지를 못했다”며 “바퀴 빵구(펑크)를 때우는 기술부터 익혔는데, 선배들에게 엄하게 기술을 배웠다”고 회상했다.

지금은 조립 효율성을 위해 자전거가 반쯤 조립된 상태로 가게로 배송돼 큰 틀만 맞추면 된다.

하지만 당시에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부품을 조립해야 했다고 한다.

숙련자도 하루 4~5대 완성이 고작일 정도로 쉽지 않고 고된 일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자전거 구조를 속속들이 알며 해체와 조립 내공이 쌓일 수 밖에 없었다. 반조립에 익숙한 지금 젊은이들은 그만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자신했다.

정 명인은 “당시 국산 자전거는 ‘포크(자전거 앞바퀴를 잡아 손잡이와 연결해 탄 사람이 방향을 조절하고 균형을 잡는 부품)’가 잘 부러졌다”며 “LP가스용 산소용접기가 없던 시절이라 ‘카바이드’라는 화학물질을 담은 통을 물에 넣으면 나오는 거품(가스)로 용접을 했는데 위험했다”고 설명했다.

또 기술과 자금이 부족해 자전거를 만드는 우리 쇠의 강도가 물렀고 일제가 좋았는데 지금은 많이 발전했다고도 했다.

그의 자전거 인생은 포항의 도시 발전과 우리나라 산업 성장과도 궤를 같이 했다.

포항제철이 지어지고 노란 제복의 자전거 부대가 출퇴근하는 풍경 속 많은 애마를 조립했다. 울진 등으로 이어지는 도로 건설 현장에서는 지금의 트럭 역할을 하던 ‘리어카’도 한 달 100~200대나 판매·조립했다며 산업 역군과 함께한 자부심을 가졌다.

또 옛적 비포장이었던 죽도시장의 구획 정리 등 성장 발전과 오거리 탑의 생멸도 가게의 코앞에서 목격했다.

MB 정권 녹색성장 당시에는 자전거가 매우 많이 팔렸고, 2~3년 전 암흑기를 거쳐 지금은 또 다시 코로나19 재난지원금 및 비대면 운동 붐으로 6~7세 어린이용 자전거부터 청소년·성인 자전거도 많이 팔린다고 했다.

‘이야기를 잘하지 못하는 편’이라며 묵묵히 들어주는 성격이라지만, 이런 겸손과 자제가 그의 자전거방을 ‘동네 사랑방’으로 문턱을 낮게 해 편하게 사람들이 드나들게 하는 듯했다.

전국 판매 1위를 기념하는 깃발. 정진영 대표의 작고한 큰 형님(정훈)이 살아 계실 당시인 1996년 받았다. 손석호 기자

반세기 동안 그가 도·소매로 판매하거나 수리한 자전거는 수십 만대를 헤아린다. 1990년대 말에는 한해 무려 8000~9000 대나 팔았고 수년간 전국 판매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지금도 전국에서 2~3위 판매를 수시로 기록하며, 경북·대구 지역에서 가장 많이 판다.

그 비결로 좋은 위치 조건과 도매 판매 등을 꼽았지만, ‘커리어(경력)가 쌓여야 한다’고 오랜 세월 축적된 내공을 짐작하게 했다.

삼천리 자전거 포항 죽도점 정진연 대표의 가게에는 전국 판매 2~3위 및 대구 경북 판매 1위 등의 다양한 기념패가 걸려 있다. 손석호 기자

전기 자전거도 전기선·배터리 등이 더해졌지만, 결국 기본 틀은 기존과 같기에 수리 등에는 막힘이 없다고 했다.

하려는 이가 많지 않고 전문직이다 보니 ‘앞으로 이 일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아들에게도 전수해주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

회사원인 아들은 묵묵부답이지만 ‘반반’으로 본다고 했다. 하지만 분명 쉬운 것은 아니다. 일하는 것은 몸에 배야 하고, 특히 부지런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IMF가 포항에는 없다’고 하던 당시 전국에서 가장 많은 자전거도 팔아봤지만, 주위 사람들이 억대 외상값을 떼어먹어 부도가 나 실상 가장 힘든 시기였기도 했다고 술회했다. 연간 이자로만 억대를 갚기도 했지만, 열심히 계속 일을 하다 보니 다 정리되고 보람과 기쁨, 희망을 느꼈다고 담담히 털어놨다.

그가 생각하는 제1 덕목은 ‘성실’. 일 년 365일 아침 8시 반부터 저녁 8시까지 꼬박 일하며 일요일도 저녁 시간만 잠시 쉰다.

그의 수리 실력을 묻자 가게 일을 돕는 아내는 “남편은 오랜 경력으로 자전거에 훤히 알고 있어 남들이 못하는 고급 자전거의 세밀한 부분도 수리할 수 있다”며 “또 망가지면 다른 사람은 구조를 몰라 분해에서 막히고, 부품도 빼내지 못하는데 그 길을 잘 알고 있는 차이가 크다”고 설명했다.

포항 오거리에 위치한 삼천리 자전거 포항 죽도점 정진연 대표의 자전거 가게에는 많은 손님들이 사랑방처럼 편하게 들러 타이어에 공기를 넣고 대화도 나누기도 했다. 손석호 기자

자전거 예찬론으로 “저와 함께 가게에서 일하시는 두 분도 70대의 나이에 50년 경력의 자전거 베테랑”이라며 “온종일 몸을 움직이니 운동이 되고 수리를 위해 머리를 쓴다. 또 고객과 대화를 하다 보니 우리 모두 나이보다 젊고 건강하게 살고 있다”고 자랑했다.

일이 실증이 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고 있어 ‘천직’이라 생각한다고 생각했다.

정진영 대표에게 ‘자전거에서 배운 인생론’을 묻자 “달리던 자전거는 가만히 서면 넘어진다. 하지만 굴러가면 넘어지지 않는다”며 “자전거 페달을 밟듯이 삶도 계속 노력하고 진행하며 원하는 방향성으로 나아 가야 한다”고 답했다.손석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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