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일 경북북부보훈지청
김구일 경북북부보훈지청 등록보상팀장

39640, 1078, 312, 741, 339, 112, 129, 120, 163, 192, 23, 121, 99, 262, 34, 2 여기에 기재된 숫자는 6·25전쟁 중 이국만리에서 산화한 미국 영국 캐나다를 에디오피아를 비롯한 참전 16개국 전사자 숫자다.

광복후 타의에 의해 국토는 남북으로 갈라졌고 북한 김일성은 1949년 3월 스탈린에게 남침을 요구했고 이듬해 3월30일부터 4월 25일까지 박헌영과 함께 스탈린을 찾아가 남침을 승인 받았다. 그 당시는 일제의 중공업 시설들이 북한에 있었기 때문에 경제력 군사력 등 국력이 남한보다 앞서 있었고, 드디어 1950년 6월 25일 남침을 개시하게 된다. 이에 대한민국은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에 직면하게 되나 미국을 위시한 유엔참전 16개국이 도움을 손길을 보내주었고, 대한민국 국민의 자유수호의지와 참전국 때문에 자유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게 됐다.

이에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경제 기적을 이루어 G20에 이르게 되었다. 우리는 경제 뿐아니라 K-POP, 영화, 드라마 등 대중문화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고, 코로나 사태에서도 세계가 부러워하며 K-방역을 칭찬하고 있다.

현재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토양에서 경제, 정치, 사회, 문화, 군사 등 모든 분야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있고, 우리를 도와주었던 국가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국력을 가지게 됐다. 우리나라가 현재의 국력을 가질 수 있었던 토대는 분명 우리가 피와 땀을 흘린 결과이다. 그러나 근본 원인은 6·25때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미국, 영국을 비롯한 선진국뿐 아니라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 소련의 위협에 생사의 갈림길에 있었던 터키 등 유엔 참전국의 자유수호의지와 이 땅에서 숨진 유엔군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은 2차대전 중 많은 젊은이들이 희생되었지만 피 한 방울 안 섞인 이국땅에 젊은이를 파병하여 우리의 자유를 지켜주었다. 이후에도 미국은 우리의 국가안보, 경제, 정치체제에 많은 도움을 준건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번영은 6·25 때 많은 희생을 치른 미국의 도움을 부정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지금 우리가 미국이나 외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전쟁에 참전하려 하면 대다수가 반대할 것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역지사지의 태도로 미국을 비롯한 유엔 참전국의 은혜를 다시 한번 마음속에 되새기자.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수상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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