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채의 주인은 어둠이다. 입구마다 봉인되었던 빛은 밀려나
고 한때 문지방 너머로 쓸려나가던 어둠의 자물쇠가 비명을 지
른 이후 집의 내력을 말하는 문짝이 떨어져 나간 방문의 검은
입 어둠의 검은 혀가 끊임없이 널름거린다.

희망을 끓여내던 밥상에 두꺼운 먼지가 차려지고 둘러앉은
어둠은 말한다. 이제 우리가 갈 길은 폐허 쪽이다. 꿈이 빠져나
간 자리에는 절망이 빠르게 교체되고 희망을 떠받치던 대들보
는 오랜 골다공증에 허리가 휜다. 손가락만 움직여도 관절 구
석구석 추억이 삐걱이는 저녁

폐허는 익는다. 감나무 붉은 열매가 절망을 익힌다. 추녀 아
래 필라멘트 끊긴 백열등으로 더 이상 이승의 꿈은 송전되지
않고 세상의 빛으로부터 밀려난 어둠은 도처에 흘러넘친다. 죽
은 이들의 인광처럼 달개비 푸른 꽃 발광하는 몰락의 시간, 으
깨어지는 한 쪽 어깨로 달빛도 무겁다.


<감상> 한 집에서 오래 살았으니 집은 곧 내 몸과 같다. 열정과 희망이 가득했던 젊은 날은 어디 가고, 골다공증에 허리가 휜 노인이 방에 자리 잡고 있다. 쓰러져 가는 집의 폐허가 바로 우리네 삶의 모습이 아닌가. 빛과 희망으로 끓여내던 꿈은 빠져 나가고, 어둠과 절망으로 가득한 집이 되고 만다. 내 몸이 빠져나가면 곧 폐가가 되어 무너질 집. 이를 지켜보는 감나무도 몇 년을 버티지 못하고 말라갈 것이다. 인간의 몸은 꿈을 향해 달리다가 몰락의 시간으로 점점 가깝게 다가가는 폐허의 신전이 아닌가. (시인 손창기)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