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은 탑이다
닻처럼 휘어진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물이랑 위에 쌓아온 인고의 돌탑이다

새벽마다 바다로 물 보러 나가신 아버지가
탑돌이 하는 참배객마냥 섬 주위를 돌며
가장(家長)이라는 그물로 건져 올린
바다의 심장이다

섬은
숨 가쁘게 달려온 물고기들
지친 날개 접고 쉬어가는 바다새들
대대로 살아온 바닷가 이웃들에게
아랫목을 내어주며

풍랑에 제 살 깎이는 줄도 모르고
다시 주워 올려 돌을 쌓아야만 하는
시지포스의 신(神)처럼
아버지의 섬은 나의 학비였고,

만선의 깃발 꿈꾸면서
짙은 해무 속에서도
늘 선 채로 아침을 맞이하며
생(生)의 뱃길을 밝혀주는 등불이었다

이제는
소금꽃 피어있는 바다장화 벗어놓고
바위섬으로 들어가신 아버지
나는
아버지의 젖은 발 닦아드리고 싶다


<감상> 섬은 바다의 심장이 내놓은 파도와 안개 때문에 둥글어진다. 아버지는 섬에 입을 따고 들어가 또 다른 섬을 쌓는다. 가장으로서 쌓는 인고의 탑이자 뱃길을 밝혀 주는 등불이 된다. 늘 아버지의 마음속엔 섬 속에 섬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 섬은 둥글어지기에 제 살 깎이는 줄 모르고 모든 걸 품고 내어준다. 섬과 보름달 사이, 벨트를 걸어 놓는 아버지는 변함없이 바닷물을 높였다 낮췄다 한다. 이에 화자는 아버지의 젖은 발을 닦아드리고 싶은 마음이 그윽할 것인데, 파도 또한 발을 말끔히 닦아드릴 것 같다.(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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