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외를 먹다가 나도 모르게 참외 씨를 삼켰다.
아아, 큰일 났다.
낼모레 내 몸에서 참외 싹이 파랗게 돋아날 테니.

여름 텃밭
줄줄이 뿌려 심은 며칠 만에
파란 싹 뾰조록이 나오던 배추 씨처럼.

어떡하나,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참외 씨를 꿀꺽 삼키고야 말았으니.


<감상> 여름 과일을 먹으며 삼킨 씨앗이 참외뿐이겠나. 수박씨, 물외 씨, 호박씨 등 수없이 많다. 어릴 적 어른들은 내 몸에서 싹이 돋아날 것이라고 놀려댔다. 아니면 배설한 똥에서 싹이 틀 거라고 했다. 농경사회에서는 내가 눈 똥이 자연스럽게 모든 채소의 거름이 되었다. 배추 씨가 고래의 지느러미처럼 들판에서 생명이 넘실거렸다. 도시에서 누는 똥은 거대한 정화조를 거쳐 바다로 간다. 생명선의 순환이 차단된 셈이다. 참외 씨를 삼킨 시인은 “어떡하나”며 큰 걱정 보따리를 든 것처럼 말을 한다. 하지만 내 몸도 썩으면 흙으로 돌아가 참외의 싹을 틔울 것이라고 동조하고 있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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