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란
사랑방에서
공부와는 담쌓은 지방 국립대생 오빠가
둥당거리던 기타 소리
우리보다 더 가난한 집 아들들이던 오빠 친구들이
엄마에게 받아 들여가던
고봉으로 보리밥 곁들인 푸짐한 라면 상차림

행복이란
지금은 치매로 시립요양원에 계신 이모가
연기 매운 부엌에 서서 꽁치를 구우며
흥얼거리던 창가(唱歌)

평화란
몸이 약해 한 번도 전장에 소집된 적 없는
아버지가 배 깔고 엎드려
여름내 읽던
태평양전쟁 전12권

평화란
80의 어머니와 50의 딸이
손잡고 미는 농협마트의 카트
목욕하기 싫은 8살 난 강아지 녀석이
등을 대고 구르는 여름날의 서늘한 마룻바닥

영원했으면… 하지만
지나가는 조용한 날들
조용한… 날들…


<감상> 공부와 담 쌓았기에 기타소리가 듣기 좋고, 치매로 요양병원에 계시기에 이모의 창가(唱歌)가 그립고, 몸이 약하였기에 전쟁 통에 살아남았고, 같이 늙어가기에 어머니와 딸이 친구가 된다. 안 좋은 것들이 전화(轉化)되어 행복과 평화를 탄생시키고 있는 풍경들이다.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어렵다는 어머니의 말씀이 느껴지는 나이가 되었다. 내가 권력욕과 물욕에 물들여졌다면 조용한 날들이 없었을 것이다. 이만큼 사는 것도 어머니 덕택이다. 여름날 툇마루에서 등 대고 한 숨 푹 잤으면 좋겠지만, 이 또한 지나간다. “조용한… 날들…”사이에 낀 소란한 일들도 지나간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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