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임금은 하늘을 대신해 만물을 다스리기에 직위를 천위(天位)라 하고, 관직을 천직(天職)이라 합니다. 기필코 인재를 구하여 관직에 배치하는 것은 하늘이 준 임무를 함께 수행하기 위해서입니다. 선한 자를 높여주고 악한 자를 벌하여 왕실과 조정이 일체가 되면 나라가 다스려지지 않을까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올바른 인물을 등용하고 바르지 않는 인물을 버려서 군자의 도가 자라나고 소인의 도가 사그라지게 하면 어질고 재주 있는 인물이 등용되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송나라 신하 범중엄이 말하기를 “예로부터 국가는 재이(災異)가 있었습니다. 다만 군주의 성대한 덕과 선한 정치가 천하에 두루 미쳐 사람들이 감히 원망하거나 배반하지 않는다면 재이가 발생하더라도 재앙과 난리는 없을 것입니다”

숙종 때 영의정 김수향은 국가적 재난에 책임을 통감,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자신의 사직상소에서 국가적 재난에 대해 통치자가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하는가를 논했다. 자연이 주는 재난은 언제든 극복하고 다시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국가적 위기로 이어지느냐 아니냐는 결국 통치자에 달렸다. 실력과 인품을 기준으로 인사가 투명하게 이뤄지고 좋은 인재들이 몰려와 역량을 집중적으로 대응하면 능히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비단 천재지변 뿐만 아니다. 우리에게 닥친 모든 불확실성 위기 상황도 마찬가지다. 병자호란 때 척화론을 주도한 김상헌의 손자인 김수항은 천재지변으로 나라가 재난에 빠지자 영의정 자리를 주저 없이 내놓았다. 조선 시대 국가적 재난이 발생하면 이를 정치가 잘못 행해지고 있는 것에 대한 하늘의 경고로 간주, 높은 관직자들은 책임을 지고 사직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한 사항들이 자연현상이라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일지라도 국록을 먹는 공직자로서 무한 책임을 진다는 책임의식이 몸에 배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22전 22패 부동산 정책으로 ‘부동산 재난’을 자초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에 대한 사퇴 요구가 빗발친다. 장관 자리를 붙들고 있는 당사자나 붙들어 두고 있는 인사권자나 모두 재난급 배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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