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이 사람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그래서 나는 무엇인가
사람처럼 내 기억이 내 팔을 늘리며 질질 끌고 다녔다, 빠른
걸음으로 나를 잡아당겼다, 촛불이 바람벽에다 키우는 그림자처
럼 기시감이 무섭게 너울거렸다
사람보다 더 큰 사람그림자, 아카시아나무보다 더 큰 아카시
아나무그림자
그러나 처음 보는 노인인데…… 힘이 세군, 내 기억이 벌써
노인을 만들었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생각을 하는 누군가가 나를 돌보
고 있었다

기억이 나를 앞지르기 시작했


<감상> 그리워하는 사람 때문에 내 기억이 자꾸만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대가 올 시간과 그 자리에 서 있으면 어김없이 그대가 왔다. 그대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먹고, 함께 영화를 보고, 함께 자전거를 타는 기억들을 먼저 하면, 그 일들이 그대로 찾아온다. 전생에서 일어난 일처럼 기시감이 몰려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간절한 기억들이 만들어낸 거대한 그림자일까. 그 이유는 내 기억이 만들어낸 누군가도 함께 기억을 만들고 나를 돌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억들아, 너무 빨리 먼저 달려가지 말거라. 내가 품고 있는 생각들이 찾아오지 않을까 겁이 난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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