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최근에 ‘천박한 도시’란 말이 장안의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집권 여당의 대표가 한강변의 아파트 숲을 보고 서울의 천민자본주의 주택문화를 비판한 것을 두고 일부 언론에서 “서울을 천박한 도시라고 폄하했다.”라고 몰아붙인 것입니다. 정작 본인은 프랑스 파리의 예를 들면서 우리도 그런 역사적, 문화적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인데 문맥을 다 잘라 먹고 “누가 또 말 실수를 했네~”로 각색을 한 것입니다. 그야말로 천박한 언론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도 몇 년 전 한강변을 몇 번 거닐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느낀 소감도 딱 그대로였습니다. “서울은 참 천박한 도시다.”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제가 며칠 묵었던 강변 아파트도 오래된 열 몇 평짜리 아파트였는데 주차장에는 외제차들이 즐비했습니다. 그때도 이미 집값이 어마어마해서 지방에 집 한 채 있는 사람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살 수 없는 가격이었습니다. 그런 물신주의 세상에 살면서 서울 이남의 모든 도시를 ‘시골’이라 부르는 사람들의 도시가 어떻게 천박한 도시가 아니란 말입니까? 서울은 누가 뭐래도 천박한 도시가 맞습니다.

물론 서울만 천박한 도시인 것은 아닙니다. 부산, 대구, 인천인들 천박하지 않겠습니까? 오십보백보인 것을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이제 경제성장도 어지간히 했으니 삶의 질에도 관심을 좀 갖고 후손들 생각도 좀 하자는 절박한 심정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천박하지 않게 될까요? ‘근대문화유산’이라는 명목으로 오래된 집은 무조건 보수해서 건사하고 흑역사든 백역사든 스토리텔링이 될 만한 것이라면 모두 다 끌어와서 세금으로 분칠을 해야 천박함을 면할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몸담고 사는 도시, 그 공간에 대한 애정이 먼저입니다. 보존할 기억이 무엇인지에 대한 합의, 그 공유적 인식의 성숙이 먼저입니다. 『마산의 근대사회』란 책에서도 그런 문제의식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마산은 각 시대별 특징이 도시의 공간에 잘 남아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중략> 도시 중심부의 경우, 1760년대의 도시 구조가 1899년대까지 이어졌으며, 개항 이후에는 조계지에, 러일전쟁 이후부터 일제 강점기에 걸쳐 신마산과 중앙마산이 형성되었고, 1960년대 후반기부터 한국사회에 불어 닥친 산업화가 이 지역에 본격적으로 밀려오기 시작하면서 동마산이 탄생되었다. 곧 (도시의) 공간 구성 자체가 한 시대를 표상하는 의미를 내포하게 된 것이다. <중략> 또한 그 중심부(마산포)에 조선시대 ‘최대의 항구 시설’이 들어섰다는 사실 역시 중시되어야 한다. 1킬로미터 이상에 걸쳐 조성된 항구 시설은 이 도시가 안고 있는 해양성을 드러내기에 충분하다. 고려 말부터 중앙 정부에 의해 시작된 방어적이고 폐쇄적인 남해안 정책에서 개방적인 정책으로 전환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근의 제포 왜관이 삼포왜란과 임진왜란 이후 폐쇄된 지 거의 200여 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유장근, 『마산의 근대사회』>


마산포는 행정도시의 성격은 미흡했지만 자발적으로 성장하고 시대의 변화를 온몸으로 겪은 ‘역사적’ 도시입니다. 마산만큼 한 나라의 역사가 고스란히 반영된 도시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런 마산이라고 해서 ‘천박한 도시’ 열풍을 비켜 갈 수는 없었습니다. 마산, 진해, 창원을 합치면서 도시명이 창원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옛날에는 부산포가 동래부에 속해 있었던 것처럼 창원이 지역 대표 이름이었던 때도 있었습니다만 근대사의 격랑 속에서 마산이 차지하고 있던 이름값은 그 어떤 도시보다도 가치있는 것입니다. 3.15 마산의거, 부마사태(10.26), 마산수출자유지역을 기억하는 우리 세대로서는 참 아쉬운 결과였습니다. 행여 통합도시 ‘창원시’가 신도시가 지닌 부동산 가치 때문에 선택된 ‘천박한 결정’이 아니었기만을 진심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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