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의
나뭇잎이 떨어지자 입이 없어 졌다

하고 싶은 말을 담아낼
그릇이 마땅치 않다
흘리거나 넘쳐버려서
주변을 어지럽히거나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은
말이 아닌 말
크지도 작지도 않게
뜻이 잘 담기는 말의 그릇을 찾는다

나이테가 커지면서
안 보이던 슬픔이 보인다
말로는 다할 수 없는 눈빛
눈빛으로 다 전할 수 없는
깊숙한 고백을 / 담아낼 용기가 없다

나무는 잎을 모두 떨어 뜨렸다
말이 사라졌다

슬픔을 담아낼 가장 든든한 그릇은
침묵이라고 / 나무는 적고 있다


<감상> 나무의 어머니인 나뭇잎이 떨어지니 입이 사라진다. 입이 사라지니 할 말이 사라지고 침묵만 남는다. 나무는 그 많던 입들을 차츰 버린다. 주변을 어지럽히지 않고 하고 싶은 말만 담는 그릇을 찾는 셈이다. 오래된 나무일수록 슬픔이 더 잘 보이고 눈빛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다. 나무만 그러한가. 비 온 후에 흙길의 물웅덩이도 그릇이 된다. 빗물의 말을 알맞게 담다가 침묵으로 가는데 상당히 빠르다. 바위도 나무의 그늘을 담고 있다가 서서히 지워나가므로 그릇이 된다. 연륜이 많아질수록 나무, 물웅덩이, 바위를 닮아 가야 할 일이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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