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은 국면전환을 위해 세 차례의 환국(換局)을 단행했다. 1680년 ‘경신환국’으로 집권당인 남인이 몰락했다. 1689년 ‘기사환국’에서는 서인이 제거됐다. 1694년 ‘갑술환국’에 의해 다시 남인이 숙청되고 서인이 재집권했다. 이 과정에서 숙종은 일당이 조정을 독점하는 정국을 운영했다. 이 때문에 각 당파는 상대 당파의 전멸을 시도함으로써 보복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보복의 악순환은 피바람이 난무하는 극단적인 정국으로 몰고 갔다. 서로 죽이고, 귀양 보내고, 내쫓는 일이 다반사가 됐다. 인현왕후의 폐위를 목숨 걸고 말렸던 정시한은 원칙 없이 자신의 기분에 따라 조변석개하는 숙종의 환국정치를 비판하는 사직상소를 올렸다.

“이 나라는 너그럽고 어진 마음으로 세워져 예로서 신하를 대우하며 대신들을 죽인 전하의 조정 같을 때가 있었겠습니까. 전하께서 즉위하신 지 16년 동안 정국은 크게 세 번 변했습니다. 그때마다 오로지 한쪽 편의 사람만 쓰시어 내쫓긴 자들이 한을 품어 뼈에 사무쳤고, 뜻을 얻은 자들은 중상모략을 일삼았습니다. 전하께서는 그저 이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두고 서로를 융화하여 인심을 바로잡을 생각은 하지 않으시니 신은 이대로 가다가는 전하의 조정에 싸움이 그칠 때가 없을까 두렵습니다.”

바른말에 귀를 닫아버리고 오직 자기만 옳다고 생각, 난국을 자초하는 숙종에 대해 정시한은 직격탄을 날렸다.

“지금같이 인재가 매우 부족한 때는 일찍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나라를 둘로 쪼개었기 때문입니다. 옛사람이 말하길 편벽되어 한쪽에만 말을 들으면 간악한 일이 생기고 한쪽에만 맡기면 혼란을 사게 된다고 했습니다. 전하께서는 사람을 좋아할 때는 무릎 위에 안아줄 것처럼 하다가 물리칠 때는 깊은 못에 밀어 넣는 것처럼 하여 마음이 일정하지 못합니다. 그로 인해 신하들이 제 몸만 위하고 나라의 일은 생각하지 않아 조정이 질서가 없고 뒤숭숭한 것입니다.”

“우리 헌법의 핵심 가치인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 허울을 쓰고 있는 독재와 전체주의를 배격하는 진짜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이다” 정시한 상소와 비견되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촌철살인 직격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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