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인간이 누리는 세 가지 호사는 식욕·성욕·죽음이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라캉의 변이다. 정사는 외부로 드러내기엔 꺼림칙한 욕망이고, 사멸은 중간에 사용이 불가능한 일회용 속성이다. 자연히 공개적 표출 장면은 음식 섭취 행위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먹는 방송의 줄임말인 ‘먹방’은 한국인 특유의 문화이다. 외국의 방송사가 취재할 정도로 열광한 현상이기도 하다. 차승원이 진행하는 예능 프로인 ‘삼시 세끼’가 인기를 끄는 것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저마다 사정상 마음껏 먹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대리 만족인 탓이다. 마치 포르노 필름처럼 원초적 식탐을 일깨운다.

심홍색 장미꽃은 미인의 대명사로 상징된다. 새빨간 입술과 감미로운 키스 그리고 에로틱한 성애가 떠오른다. 라캉도 성욕의 사치를 논하면서 한 번쯤 장미를 연상하지 않았을까. 호모 사피엔스 직립 보행이 교접과 연관됐다는 주장은 흥미롭다. 지구상 포유동물 가운데 두 발로 걷는 종족은 인간이 유일하다. 그 덕분에 생태계 정상을 차지했다.

인류의 오랜 조상이 똑바로 서서 걸은 원인에 대해선 몇 가지 주장이 있다. 그중 하나가 섹스와 관련돼 있다는 가설이다. 사람은 서로 마주본 자세로 성교를 나눈다. 오직 뒤에서 교미하는 여타 동물과 다른 점이다. 게다가 발정기가 없어 언제라도 관계가 가능하다. 개체 숫자 유지를 위한 다산 전략 일환이다.

그들은 양육 기간이 긴 아이를 키우고자 이동 거리가 짧은 정착 생활로 전환했다. 그 때문에 네 발을 사용할 필요가 줄면서 직립 보행으로 바꿨고, 앞쪽 두 발은 아기를 안거나 먹이를 집는 용도로 진화됐다. 이성을 유혹코자 여성은 장식으로 멋을 내면서, 사랑이라는 사회적 약속도 창안했을 거라는 요지다. 이는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 설명으로 평가된다.

장미는 그리스·로마 시대에 자연 교잡으로 변종을 재배했을 만큼 역사가 깊다. 꽃잎의 빛깔에 따라서 꽃말도 다르다. 그리스 신화상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의 애절한 사연과 어우러진다. 또한 매년 5월 14일은 ‘로즈 데이’로 연인끼리 장미를 주고받고 키스를 나눈다.

이는 정인들 내밀한 욕구인 듯하다. 그 변천사는 성문화 개방과 궤를 같이한다. 정애를 묘사한 예술 작품의 관능적 소재로 왕왕 차용된다. 특히 로맨스 무비는 입맞춤 농도를 통해 남녀 간 심리 상황을 나타낸다.

영화 속 최초 키스는 1896년 ‘키스’에 처음 등장했다. 이후 30년 동안 뽀뽀 수준으로 행해지다가 1926년 개봉된 ‘육체와 악마’에서 오픈 마우스가 있었다. 가장 진한 프렌치 키스는 1961년 ‘초원의 빛’에서 나왔다. 지붕 없는 컨버터블 차에서 주연들이 선보였다. 제일 섹시한 신으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클라크 게이블과 비비언 리가 뽑힌 적이 있다. 키스 오래하기 대회 신기록은 태국 선남선녀 58시간 36분이다. 입술이 팅팅 부르텄을 성싶다.

영화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엔 “입술을 키스하는 용도로 써본 지 오래됐네” “입술 키스하다가 이젠 뺨 키스로 강등됐군”이란 대사가 재밌다. 헤밍웨이 원작인 ‘무기여 잘 있거라’에는 상대를 애무하면서 ‘피아노 건반처럼 부드럽다’고 남자가 속삭인다. ‘웨딩 싱어’는 결혼을 앞둔 신부의 요청으로 키스 연습을 하던 처녀 총각이 밀회에 빠지는 설정이다.

장미 도시를 지향하는 포항에 살다 보니 아무래도 그녀를 접할 기회가 잦다. 자택 인근 철길숲 공원엔 정원이 조성돼 더한층 그러하다. 수시로 산책을 다니며 장미꽃 단상이 많아졌다. 단순한 미모와 입술과 키스를 넘어 섹스로 비화하니 스스로 놀랍다. 이곳 장미는 파장 분위기가 완연하다. 엉성한 가지와 꽃대가 말끔히 정리된 상태다. 내년을 기약하며 그녀는 애원한다. 이제는 자신의 못생긴 이파리와 가시도 사랑해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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