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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단] 악수
[아침시단] 악수
  • 김희준
  • 승인 2020년 08월 09일 16시 40분
  • 지면게재일 2020년 08월 10일 월요일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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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 근육을 잡느라 하루를 다 썼네. 손아귀를 쥘수록 속도가
빨라졌네. 빗방울에 공백이 있다면 그것은 위태로운 숨일 것이네.
속도의 폭력 앞에 나는 무자비했네. 얻어맞은 이마가 간지러웠네.
간헐적인 평화였다는 셈이지. 중력을 이기는 방식은 다양하네. 그
럴 땐 물구나무를 서거나 뉴턴을 유턴으로 잘못 읽어보기로 하
네. 사과나무가 내 위에서 머리를 털고 과육이 몸을 으깨는 상상
을 하네. 하필 딱따구리가 땅을 두드리네. 딸을 잃은 날 추령터널
입구에 수천의 새가 날아와 내핵을 팠던 때가 있었네. 새의 부리
는 붉었었네. 바닥에 입을 넣어 울음을 보냈네. 새가 물고 가버린
날이 빗소리로 저미는 시간이네. 찰나의 반대는 이단(異端)일세.
아삭, 절대적인 소리가 나는 방향에서 딸의 좌표가 연결되는 중
이네. 물구나무를 서서 세상을 들어 올리는 내가 있네. 빗줄기를
잡느라 손은 손톱자국으로 환했네. 물집이 터졌으나 손금에는 물
도 집도 없었네. 단지 여름이 실존했네.

<감상> 한 때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줄기를 손으로 자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네. 손에 시퍼런 멍이 들었을 뿐. 중력의 힘을 거스르는 방법을 나름대로 시도해 보지만, 역시 굴복하고 말았네. 세상을 바꿔보려는 노력을 하면 할수록 세상의 틀과 속도의 폭력 앞에서 무력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네. 어느 순간 이상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땅에 묻어둔 울음에 지나지 않았네. 안 될 줄 뻔히 알면서 빗줄기를 잡으려는 시도는 할만 하였네. 손바닥이 환해지는 순간이 느껴지기도 하였으니까. 고통도 잠시일 뿐, 지금 이 순간 나와 여름이 실존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니까.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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