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KF갤러리 ‘한-우크라이나 현대 사진전’ 참여

정성태 사진작가
러시아 연해주에서 강제이주 후 향수 간절한 고려인 삶을 6년째 촬영한 경북 영천 출신 사진작가 정성태(50) 씨가 서울 중구 KF갤러리에서 열린 ‘한-우크라이나 현대 사진전’에 참여해 주목을 받고 있다.

9월 23일까지 ‘관점’을 주제로 열리는 이번 전시에는 정성태, 전리해, 이지영 등 한국 작가 6인과 드미트로 쿠프리얀(Dmytro Kupriyan), 크롤리코브스키 아트 듀오(Krolikowski Art Duo), 그레고리 베프렉(Gregory Vepryk) 등 우크라이나 작가 6인(팀), 총 12인(팀)이 참여했다. 일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창의적으로 표현한 작가들의 신작 129점을 포함한 작품 총 160여 점이 소개됐다.

정성태 작가와 크롤리코브스키 아트 듀오의 경우 2017년 양국 수교 25주년 및 고려인 이주 80년 계기에 개최된 KF갤러리 전시 ‘이주와 정주의 삶’에 참여한 바 있다. 한국과 우크라이나를 오가며 ‘체르노빌’, ‘꼬레이스키(고려사람들)’ 등의 작업 시리즈를 선보인 정성태는 이번 전시에서 한국과 우크라이나를 오가며 느낀 일상 속 내적인 기억을 담아낸 폴라로이드 사진 90점을, 크롤리코브스키 아트 듀오는 미래 인공지능(AI)에 관한 영상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작가 정성태 씨는 상처 입은 사람들의 모습을 렌즈로 담는데 몰두하고 있다.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의 희생자를 기억하기 위한 사진 작업에서 시작해 1986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사고 후 피해 지역으로 돌아와 사는 주민, 중앙아시아 곳곳으로 흩어져 사는 고려인을 촬영하고 있다.

고려인에 관심을 갖게 된 건 2013년 체르노빌에 사는 주민을 촬영하고자 우크라이나를 방문했을 때 고려인 통역사를 만나면서부터다.

정 씨는 “체르노빌 주민 모두가 고향을 등졌지만 70대 이상의 150여명이 귀향해 살고 있다. 이들을 자발적 정착민이라고 해서 ‘샤모설리’라고 부른다”며 “방사선 피폭 위험이 여전하지만 죽더라도 고향에 묻히고 싶은 간절함이 고려인과 닮은 구석이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샤모설리’를 촬영하러 우크라이나를 오가며 고려인을 만났고 이산의 아픔과 귀향의 꿈을 저버리지 못한 모습에서 가슴이 미어져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고 촬영을 동기를 말했다.

이후 2014년부터 우크라이나 곳곳과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에서 고려인 가족을 카메라에 담아 1만여 컷을 찍었다.

크리미아에서 이주하여 키예프 근교에 살고있는 한 아나똘리(53세)씨 가족은 9명이다. 아나똘리 씨의 어머니는 황해도 출신이며 한국어를 배워서 한국에 가는 것이 이 가족의 희망이었다. Koryo-saram_ Han Anatoli _ archival pigment print on Korean paper_ 112.5x150cm_ 2016(고려사람_한 아나똘리_한지에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12.5x150cm_2016)
정 작가는 첫 작업으로 우크라이나에서 만난 최 갈리나 할머니의 모습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고 말한다.

“강제이주를 겪었던 최 할머니를 촬영하는데 기다림에 지친 듯 표정 없는 얼굴로 먼 곳을 응시하는 눈동자에서 그리움, 덧없음, 회귀본능을 느꼈죠. 고려인 가족들이 부르는 아리랑을 듣는데 아픔이 절절하게 다가왔습니다. 두 달 뒤 최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는 더 늦기 전에 이분들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야겠다는 의무감이 생겼습니다.”

그는 인물을 촬영하는 사진 작업은 관광지 기념촬영처럼 몇 분 만에 끝나는 것과 달리 끝없는 기다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작가는 “한국 공관이나 현지 고려인협회의 협조를 받아 촬영에 동의를 얻고 고려인 가정을 방문하는데 무턱대고 카메라를 들지 않는다”며 “처음으로 모국에서 온 사람을 만난 반가움과 더불어 경계심·어색함도 있기에 시간을 들여 대화를 나누고 설문조사를 하면서 소수민족으로써 겪은 아픔 등이 드러날 때까지 기다린다”고 소개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그는 고려인의 삶과 한국사의 굴곡이 이어져 있다는 것을 사진에 드러냈고, 몇 번의 전시회를 통해 고려인의 삶을 국내에 소개했다.

그가 매달리고 있는 주제는 ‘정주와 이주’다. 고려인은 1937년 강제 이주로 중앙아시아에서 살다가 구소련 해제 후 다시 러시아로 흩어지는 등 정주와 이주를 반복해와서다.

특히 인물사진을 찍을 때 거주 공간을 배경으로 삼는 이유에 대해 “삶의 상흔이 묻어있는 공간이라 이들이 보내온 세월과 한민족의 숨결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촬영을 위해 만난 이들과의 특별한 기억들이 작업을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소개했다.

2016년 촬영 후 얼마 안 돼 세상을 떠난 강제이주 1세 김 피레르트 씨는 일본 패망 소식을 들었지만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모국에 가보지 못한 게 평생의 한이라고 털어놓았고, 키예프에 거주하는 70대 중반의 고 알라 씨는 유일하게 기억하는 한국어가 ‘한국’과 ‘고마워’였다.

키예프 근교에서 만난 김 젠나 씨는 조부모가 돌아가실 때까지 그리워한 한국을 방문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태어나 우크라이나로 이주한 한 아나톨리도 같은 말을 했다. 만나는 이마다 모국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쳤다.

정 작가는 경일대에서 사진영상으로 석·박사 과정을 마쳤고 2006년 첫 전시를 시작으로 12회 개인전을 열었다. 200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청년작가상, 2018년 대구사진비엔날레 우수 포트폴리오, 2019년 온빛사진상 등을 수상했고 현재 대구 동성시장문화예술공간 예술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려인과 샤모설리 작업을 하면서 그는 한국과 우크라이나를 잇는 일에도 나서고 있다. 사진작가 모임인 ‘쿠다쿠카’를 설립해 양국서 전시 기획, 출판, 유라시아 소식지 발간 등을 하고 있다.

정 작가는 “사지 절단 환자가 겪는 환상통(phantom limb syndrome)을 치유하듯 고려인의 모습을 소개해 잊힌 우리 민족의 일부를 인식하도록 도울 것”이라며 “고려인의 현재뿐만 아니라 집단 농장 시절과 고려인 유적지 등 발자취를 좇아 기록하는 일도 병행할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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