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봄밤 하나씩은 갖고 있었지만
봄은 아무도 데리고 있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기엔 나이가 많고 별을 탓하기엔 영원히 어린 시
대, 아직 추운 밤들만 먹이는 봄이 물을 끓인다. 결국 재개발이
결정된 판자촌에 화재가 나고 주님의 은총으로 두 명밖에 죽지
않았다고 말하는 목회 앞에서 종교와 사람은 점점 서로를 버리던

아직도 그런 곳이 있어?

그런 곳이 있다. 집이란 있을 곳이 아니듯 봄은 내게도 있을
계절이 아니어서, 다행이야 짧아지는 밤들과 유통기한 지난 평온
이 생살을 저밀 때 조심성 없는 하늘이 봄을 가스불처럼 켜면 발
진처럼 돋는 꽃눈들을 솎아내면서

수없이 펼쳐진 흉터들이 모두 분홍빛이라는 것을
아무도 모르고 살았다


<감상> 봄은 꽃잎을 끓여 더 짙게 물들여 가지만, 우리네 삶은 봄이 와도 더 나아질 게 없다. 요즘 그런 곳이 어디 있냐고, 그런 사람이 어디 있냐고 말해도 가난하고 병든 자들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교회에서 가난하고 병든 자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해석하지 말자. 누군가는 되돌아가고 싶지 않은 집들과 오지 말았으면 하는 계절이 있다. 아직 꿈을 가지고 있기에 누구를 탓할 수는 없다. 그냥 봄밤이 상처 입은 자들의 마음을 더 붉게 물들여 가고, 아무도 그 상처를 모르고 살아가기에 더 서글픈 봄밤이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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