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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의 I Love 미술] 북으로 간, 리얼리즘 회화의 거장 이쾌대
[김진혁의 I Love 미술] 북으로 간, 리얼리즘 회화의 거장 이쾌대
  • 김진혁 학강미술관장
  • 승인 2020년 08월 12일 15시 57분
  • 지면게재일 2020년 08월 13일 목요일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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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 학강미술관 관장
김진혁 학강미술관 관장

언제부터 이쾌대(1913~1965)라는 화가를 알고 있었고 세 번이나 놀라움과 감동을 가졌다. 이름부터 남달라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쾌’자가 들어가니 한 번 듣고는 머릿속에 새겨졌다. 이어 경북 칠곡이 고향이며 휴전 후 북으로 넘어갔다는 데 다시 놀랐다. 세 번째는 해금이후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본 그의 대표작 ‘군상’ 대작을 보고 크게 놀라움과 감동을 가졌다. 르네상스 시대의 미켈란젤로가 다시 환생하여 이 곳 대구경북에서 부활한 것 같았다.

최근 뉴욕에서 영문으로 첫 발간된 한국근대미술사 서적에서 이쾌대의 자화상 회화작품이 한국 근대 서양화 자화상의 출발이자 성과라고 소개되어 근대미술가의 최고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도 최근에야 이루어진 것이다. 그의 작업을 보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국민화가로 불리 우는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에 나란히 필적할 수 있다. 오히려 형태묘사에 관한 리얼리즘의 미학으로는 더욱 풍부한 양식을 보여 주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이쾌대는 대구경북의 항일투쟁의 역사를 일찍부터 깨달았을 것이다. 칠곡군 지천면에서 12살 위 형인 청정 이여성의 영향을 받았다. 1921년 칠곡 신동소학교에 입학 후 1923년에 대구수창초등학교로 전학하여 또 한 명의 근대 서양화의 거장인 이인성과 같이 학교를 다녔다. 그 후 휘문고보에 입학하여 미술교사 장발을 만났고 가르침을 받았다. 1932년 재학시절 11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유화 ‘정물’을 출품하여 입선하였다. 그 이듬해 고교졸업과 동시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동경제국미술학교에 입학하였다. 입학 후 한국 유학생 미술학도들과 함께 ‘백우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이쾌대 군상 1948년작

1935년 대학 시절은 인물화에 관심이 높았으며 수많은 누드 스케치와 인체 드로잉을 남겼다. 1938년 졸업을 하고 26회 이과전에 ‘석양소풍’을 출품해 입선한 후 귀국하였다. 그는 1941년에 이중섭, 문학수, 진환, 최재덕 등과 함께 ‘조선신미술가협회’를 결성하였다.

이들은 그 당시 앞서가는 표현주의, 야수파 등의 전위적 모더니즘을 표방하고 실천하였다. 1945년 광복 후 ‘조선미술건설본부’에 가입하고 ‘독립미술가협회’를 결성하였다. 이어 1948년 봄 성북동에 성북회화연구소를 열고 제자들을 길렀다.

이 화실에서 배출한 여러 작가 중 국제적인 물방울 작가로 잘 알려진 김창열 작가가 있다. 이때 그의 대표작인 ‘군상Ⅰ-해방고지’의 대작을 완성하였다. 또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려 보도연맹에 강제로 가입하게 되었고 이 같은 결과는 사상을 강요당하는 분위기로 이어졌다.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인 국전에 추천작가로 선정되었고 홍익대학교 미술과에 출강하였다. 이러한 작가로서의 보상과 기쁨도 잠시 머물렀지만 곧 6·25전쟁이 나면서 모친의 병환으로 서울을 지켰다. 인민군 치하의 서울에서 강요에 의한 스탈린과 김일성의 초상을 그렸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수복 직전 그는 북한으로 피신하던 중 국군에게 체포되어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감 되었다. 이후 1953년 휴전이 선언되자 그는 북녘을 선택하여 북으로 갔다. 아마 그의 형인 이여성 작가가 마음속에 자리하면서 평양행을 선택하였을 것이다.

북한에서의 이쾌대는 조선미술가동맹에 현역미술가로 활동하면서 역사적인 리얼리즘의 작업을 지속하였다. ‘고지방어 전투’ ‘3·1봉기’등 대작들을 발표하였고 ‘중국인민지원군 우의탑’ 벽면 벽화를 제작하였다. 이쾌대는 제자인 리병호의 도움으로 그의 집에 거주하다 1957년 재혼하였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에는 “이쾌대는 기초실력이 대단히 든든하였기 때문에 구성이 복잡한 다인물의 주제들도 힘들지 않게 창작하였으며… 공인된 실력가였다.”라고 말하고 있다. 월북 이후 위장병으로 고생한 그는 1965년 사망하였다. 1988년 월북 작가들에 대한 해금으로 이쾌대의 놀라운 작업들이 우리 앞에 모습을 보였다. 1991년 신세계미술관의 전시를 시작으로 부산, 대구에서의 순회전이 개최되었다. 1995년 대백프라자갤러리의전시를 통해 작품세계가 제대로 알려지게 되었다. 2011년 대구미술관에서도 4개월간 전시되면서 대구경북을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거장으로서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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