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이 짐대에 올라/해금을 켜거든 들어라’는 고려가요 청산별곡에 나오는 기이한 표현이다. ‘사슴이 장대에 올라 해금을 켠다’는 것으로 최근에는 ‘사슴으로 분장한 광대가 높은 곳에 올라 해금을 켜거든 들어라’는 식으로 풀이하고 있다. 청산별곡의 이 같은 상황만큼이나 특별한 일이 수해 현장에서 벌어졌다.

지난 주말 장마전선이 남부지방으로 이동해 전남 지역에 큰 피해를 냈다. 섬진강 수계 남원과 곡성, 구례의 여러 곳이 온통 물에 잠겼다. 물난리에 사람뿐만 아니라 가축들도 큰 수난이었다. 전남 구례에서는 갑자기 불어난 물에 떠내려가던 소떼가 사슴이 장대에 오른 상황처럼 지붕 위에 올라 앉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수해 현장의 특이한 장면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올해 우리나라 장마는 지난 6월 24일 시작돼 50일이 넘도록 그칠 줄을 모른다. 사상 최장기록이다. 이런 긴 장마는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다. 중국도 두 달 넘게 폭우가 내려 수많은 이재민이 발생하고 있다. 만리장성 이후 최대의 토목공사라 불리는 샨샤댐이 붕괴 위험에 놓여 전전긍긍하고 있다. 폭우로 우리나라 남북한 인구에 육박하는 550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런 홍수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엄청난 규모의 산불이 발생하는 등 유래 없는 재난이 일어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와 호주 뉴사우스웨일주 등에서 일어난 산불로 엄청난 삼림이 훼손됐다. 지구온난화가 불쏘시개라는 것이 환경학자들의 분석이다. 칼 세이건이 1990년 보이저 1호가 찍어 보낸 지구 사진을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라 했는데 이 창백한 점이 위험에 처한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재난들이다. 인간이 지구의 자연에 너무 가까이 다가갔다.

지구 온난화로 시베리아 동토가 녹아 그곳에서 감당할 수 없는 메탄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는 지구온난화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탄소배출 보다 더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환경학자들은 22세기가 아니라 금세기에 지구의 환경절벽에 다다를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지붕 위의 소’는 단순한 물난리 중에 일어난 이색적인 한 장면이 아니라 환경 재난 경고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으로 봐야 한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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