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호 한동대 통일한국센터 교수, 유라시아 원이스트씨포럼 회장

20세기와 함께 등장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시간 공간 물질의 개념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충격이었다. 우주가 영원 전부터 그냥 존재한 것이 아니라 태초 빅뱅의 순간에 빛과 함께 시작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함으로 천체 물리학의 패러다임을 뒤집어 놓았다. 그러나 우주가 끝없이 팽창하고 있다는 세계관은 산업혁명 이후의 서구사회가 찰스 다윈의 진화론으로 무장하여 제국주의 세계질서로 식민지 팽창을 가속화하는데 오히려 도움을 주었다. 다가올 세상은 과학기술의 혁명을 통해 끝없이 발전할 것이라는 진보주의 사상과 맞물려 경제성장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성장을 위한 소비의 확대 재생산, 그 중심에는 약자에 대한 침략과 수탈도, 자연에 대한 생태계 파괴도 정당화시키는 자본주의 정신이 있었고, 자유에 대한 맹신이 있었다. 풍요와 가난의 높다란 분리장벽도 횃불을 높이 든 자유의 여신 앞에서는 침묵해야만 했다.

코로나 19의 세상은 이제 그 모든 것을 바꾸고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제 성장의 한계에 도달했다. 가속도로 팽창하던 세계가 빛의 속도에 다다른 것이다. 빛의 속도에 도달할 때 나타나는 현상을 유비쿼터스라고 말한다. 5G/6G에 힘입어 전지전능해진 유비쿼터스 세상은 손바닥 안에서 나를 땅끝과 연결시켰다. 저 멀리 땅끝에 있어 나와는 무관할 것 같았던 그들, 다시 말해 가난한 자와 병든 자와 소외된 자와 핍박받는 자와 흑인과 동성애자와 그리고 코로나에 걸린 사람들이 풍요의 성곽을 향해 반격하며 좀비처럼 넘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영원할 것 같았던 분단의 장벽을 넘어 북한이 미국을 겨냥하기 시작했다. 어느 누구도 어느 장소도 이제 안전한 곳은 없다. 그들의 안전이 곧 나의 안전이 된 것이다. 평등과 복지를 향한 국가적 안전망 구축이 자유보다도 상위 가치로 여겨진 것은 가히 21세기의 볼셰비키 혁명에 견줄만 하다. 코로나가 그 혁명을 이루어낸 것이다.

빅뱅의 팽창이 끝나고 나면 빅크런치(대수축)가 올 수도 있다고 천체 물리학자들은 예견하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이제 끝없는 마이너스 경제성장의 수축사회 즉 퇴보의 경제라는 미증유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는 세상 (with Corona)이 가져다 줄 새로운 세계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은 가난해지는 훈련, 덜 쓰고 덜 사고 덜 먹고, 작게 만들고, 소그룹으로 모이고 걸어 다니고, 부모 자식 간에 애틋한 마음이 오가고, 제자가 스승을 존경하고, 이웃사촌 끼리 서로 정답게 도우며 살아가는… 그런 세상이 아닐까? 나이 든 세대들에게는 뒤돌아보면 너무나도 익숙했던 어린 시절의 그 모습이다. 그리고 지금도 북한의 우리 형제들이 여전히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들이다.

우리가 따라가야 할 표준이 바뀌고 있다. 이용할 대상이 될지언정 더 이상 미국은 우리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미국 사회의 약점과 민낯이 드러나서가 아니라, 그들은 여전히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핵무력을 앞세운 강자의 논리는 코로나 사회에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북한 역시 그 논리를 고집하고 미국과 맞서려 한다면 그들 또한 새로운 세상으로 넘어갈 수 없다. 포스트 코로나 사회는 방역을 위해 서로 돕는 연대 공동체가 승리하는 세상이다. 약자들이 뭉쳐서 함께 이루어가는 자발적 연대 공동체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그것이 곧 국가경제를 좌우지 하는 표준이 될 것이다. 미소의 핵무력이 맞부딪힌 최전선에서 우리 민족은 역사의 희생양이 되어왔다. 원치 않았던 분단의 사슬과 장벽에 가로막혀 마치 두 개의 말굽자석이 N극과 N극이 맞부딪히고 S극과 S극이 서로 밀어내며 원수처럼 그렇게 살아왔다. 미국식 가치기준으로 무장한 한국 사회에서는 당연히 우리는 절대 변할 수 없고 북쪽의 말굽자석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냉정히 판단하자. 포스트 코로나 사회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한다. 한미공조만이 지고의 선이라고 생각하던 그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남쪽과 북쪽의 말굽자석이 90도씩만 서로를 향해 돌아서자. 그 순간 두 개의 자석이 철커덕 달라붙어 합체될 것이다. 그리고 그 자석은 21세기의 빅 크런치를 능히 이겨낼 만한 막강한 상보작용을 하며 실크로드와 유라시아 대륙으로 행진할 것이다.

남북경협이나 민족공조의 이야기는 단순한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빅크런치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우리의 생존전략이다. 두 말굽자석이 합체될 때 엄청난 에너지가 통하면서 주변의 방해세력들을 물리칠 것이다.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기 (with 코로나)만큼이나 필요한 것은 북핵과 함께 살아가기 (with 북핵)로 우리의 사고를 전환하는 것이다. 코로나를 당장 물리칠 수 없는 만큼이나 북핵을 당장 없앨 수 없음을 깨닫고, 그 현실 인식 속에서 국가 전략을 짜야 한다. ‘북핵과 K-방역’으로 상징되는 국가연합은 상상하기 힘든 윈윈의 열매들을 가져다줄 것이다. 그 즐거운 상상을 함께하자. 극과 극이 맞붙을 때 가장 큰 한반도 뉴딜의 먹거리와 일자리가 나타날 것이다. 핵보유국 한반도에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미군을 주둔시키기를 원한다면, 합체된 코리아의 이익에 그것이 부합하다고 판단될 때, 방위비 분담금을 미국에게 바치는 것이 아니라 당당히 미군 기지 사용료를 미국으로부터 받게 될 것이다. 미국식 대형교회가 아니라 북한의 지하교회와 같은 가정의 작은 소그룹 모임들이 종교의 본질을 회복할 것이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우리의 자라나는 남과 북의 젊고 어린 세대들이 서로 어깨동무를 하며 마음껏 뛰놀며 공부하고 토론하며 세계를 누비는 꿈을 꾸게 될 것이다.

이제 그 일을 위해, 한미 워킹그룹에 막혀서 트럭으로 넘어가지 못했던 그 휴전선을 지게를 지고서라도 넘어가서 다시 한번 만나자. 그리고 민족의 장래를 위해 진지하게 고민하며 서로 껴안고 두 볼을 비벼보자. 그것이 광복 75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우리가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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