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예감하는 방향에는 바람이 있어요

신호등 건너편에서 얼핏 닮은 실루엣이 스친 것처럼
꽃잎이 살랑대는 얼굴을 두리번거려요

까닭을 품을 때 꽃은 피어나요

꽃은 광속으로,
나는 천천히 눈을 깜빡거려요

보라를 문지르면 한 획씩 나타나는 이름

당신이 없는 봄과 당신이 지워진 봄이
하나의 풍경으로 보일 때

사람을 바라보던 한 사람의 오래된 향기가 깨어나나 봐요

무심코 길을 걷다가
보이지 않는 눈동자에 무작정 갇혀버리듯

라일락이,
라일락 바람이 불어오네요


<감상> 꽃잎이 바람과 향기와 빛깔을 예감하고, 먼저 살랑대고 깨어나고 물들여져 갑니다. 당신을 예감하는 나도 꽃잎과 같습니다. 바람이 불면 오랫동안 잊어버렸던 기억들이 그리움 쪽으로 향합니다. 사라지는 노을 쪽으로 언뜻 드러나는 보랏빛을 만질 수 있을까요. 당신이 먼저 떠났거나, 내가 당신을 지웠거나 그 사람의 향기는 남아 있습니다. 언젠가 갑자기 느닷없이 거대한 눈동자에 빨려 들어가기 때문에 가능하지요. 마찬가지로 라일락 바람이 당신에게도 불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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