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께서는 만약 백성에게 끼치는 피해가 있으면 그 때 다시 혁파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신은 더욱 온당치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일은 처음 시작할 때 여러 사람에게 묻고 상의해서 모든 것이 십분 옳고 마땅하다고 판단되더라도 그것이 과연 마지막까지 처음 계산했던 것과 같게 될지는 기약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물며 처음부터 의심스러운 점이 있는 일이 종국에 가서 어찌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더욱이 지금 조정의 명령은 백성들의 신임을 얻지 못하고 있으며 국가의 기강도 날로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는 정령(政令)과 조처가 금방 시행하다가 또 이내 그만두기 때문입니다. 정하여 굳게 지키고 오래 지속한 적이 없으니 ‘고려공사삼일(高麗公事三日)’이라는 속담은 예전부터 있었지만 오늘처럼 심한 경우가 없었습니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시조로 유명한 조선조 숙종 때 영의정 남구만의 사직상소 내용이다. 남구만의 상소는 집값만 폭등시킨 22번의 부동산 정책에 성난 민심을 무마시키기 위해 국면전환용 천도론을 다시 꺼내 든 현 정권의 조령모개식 꼼수정치를 지적한 상소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 같다.

“이른바 도에는 수많은 것들이 있지만 공자께서 ‘재용(財用)을 절약하고 사람을 사랑하라’고 한 말과 주역의 ‘제도로써 절약하여 재물을 낭비하지 않고 백성을 해롭게 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참으로 절실합니다. 지금 개인이나 나라나 창고가 텅 비어 있고 저축해 놓았던 것도 모두 써버렸습니다. 위에서 덜어 아래에 더해주고 수입을 헤아려 지출하되 불필요한 낭비를 막음으로써 실질적인 은혜가 아래 백성에까지 고루 미치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한 뒤에야 비로소 굶주리고 쇠약해진 백성을 구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설령 좋은 법과 아름다운 제도가 있더라도 한갓 헛된 문장이 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효종 때 대제학과 이조판서를 지낸 송상기의 사직상소는 국민에게 선심용으로 나랏돈을 마구 퍼붓는 현 정부의 포퓰리즘 정치에 일침이 될 것 같다. 통치자를 향해 국정의 난맥상을 날카롭게 지적할 옛 공직자의 기개가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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