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화철 한동대 교수
손화철 한동대 교수

2000년 6월 말, 제주 공항에서 탑승한 택시의 운전기사는 우리가 당시 막 생긴 렌트카 서비스를 예약했다고 말하자 표정이 일그러졌다. 숙소에 가는 길 내내 우리는 제주에서 일어난 렌트카 교통사고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다음날 아침 길을 나서니 이번엔 의약분업에 반대하며 시작된 병원 파업을 알리는 플랭카드가 곳곳에 걸려 있었다. 여기서 교통사고가 나면 어떻게 되는 걸까 하는 생각에 신혼여행의 설렘이 미세한 공포와 섞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공교롭게도 20년 시차를 두고 두 업계의 이야기가 다시 겹친다. 몇 년간의 강력한 투쟁을 통해 택시업계는 지난 4월 모빌리티 플랫폼 ‘타다’ 서비스를 종료시키는 데 성공했고, 의사협회는 의대 정원 추가 등의 정부 정책을 반대하며 파업 카드를 꺼냈다. 전혀 달라 보이지만, 기존의 이해관계를 흔드는 정책에 반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택시업계와 의사협회의 움직임이나 그에 대한 시민들 평가는 비슷하다. 2000년 어간엔 택시업계와 의사협회 모두 속절없이 굴복했지만, 2020년 택시업계는 ‘타다’ 서비스를 막는 데 성공했다. 그럼 이번엔 의사들도 성공할 수 있을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의사들의 성공 확률은 낮아 보인다. 택시업계나 의사협회처럼 변화를 원하지 않는 이해 관련자, 변화를 추진하는 정부, 그리고 최종 평가자인 시민 등 세 당사자의 역학 관계를 보면 나오는 결론이다. ‘타다’ 논란의 경우 시민들은 저렴한 가격으로 유지되는 기존의 택시 체제에 큰 불만이 없었고, 새로운 서비스를 밀어보려던 정부는 그 유용성과 혁신성을 시민에게 설득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이번 경우는 좀 다르다. 의사를 늘리자는 정부의 제안은 직관적이어서 설득력이 있고, 반대를 증명할 부담은 의사협회가 진 형국이다.

물론 현실은 복잡하고 양쪽 다 할 말이 있다. 정부는 우리나라 인구 천 명당 의사 수가 OECD 평균보다 적으며 레지던트는 과로에 시달리고 환자 당 진료시간이 짧다는 점에 주목한다. 여기에 전문의의 분야별, 지역별 불균형도 해소할 과제로 본다. 의사협회는 우리나라 환자가 진찰을 받는 빈도나 전문의를 만나기 위해 대기하는 시간은 짧고 지출에서 의료비가 차지하는 비율도 낮으며 인구 감소를 고려하면 의사의 증가율도 가파르다고 주장한다. 실질적인 의료 서비스의 질이 지금도 양호하고, 분야별 지역별 불균형 같은 문제의 본질적인 원인은 비합리적인 의료수가라는 입장이다. 이렇게 각론에 들어가면 논의 거리가 많지만, 의사협회가 파업을 선택함으로써 문제는 의사 수를 늘릴 것이냐 말 것이냐의 단순 이슈로 환원되고 말았다.

이런 식의 갈등에서 객관적 옳음과 그름은 문제의 일부에 불과하다. 시민들은 사실에 대한 양측의 해석뿐 아니라 정부나 의사협회에 대한 신뢰도와 현재 각자의 상황에서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전반적인 만족도에 따라 판단할 것이다. 예를 들어 인구 천 명당 의사 수가 1.4명에 불과한 경북의 시민은 그 수가 3.1명인 서울 시민과 이 상황을 달리 볼 수밖에 없다. 의사협회 입장에서는 이들 각각을 설득해야 할 텐데, 쉽지 않다.

불행히도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의사협회는 시민 설득보다 강경투쟁을 통한 정부 압박을 우선하고 있다. 그러나 시민들은 표만 탐하는 정부에 늘 속는 바보가 아니다. 그들도 정부가 뻔한 사실을 왜곡하고 인기에 영합하는 정책을 제시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동시에 의사가 돈 욕심을 완전히 버리고 오로지 환자의 건강과 생명만 걱정할 거란 비현실적인 기대도 하지 않는다. 민주 사회에서 시민의 종합적인 상황판단 능력을 무시하고 그 찬성과 반대가 가지는 무게를 외면하는 집단은 외면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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