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의 대동맥인 경부고속도로가 1968년 12월 21일 서울~수원 구간이 먼저 개통됐다. 첫 구간 개통 이후 1년 만인 1969년 12월 29일 서울~부산 전 구간이 완전 개통됐다. 경부고속도로는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한국의 고도 경제성장의 바탕이 된 대표적 상징물이다.

경부고속도로가 완공된 해인 1969년 구미국가산업단지가 지정됐다. 한국 최초의 산업단지다. 1973년 12월 열린 준공식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삽을 들었다. 경북 선산군 구미면 상모동(지금의 구미시)에서 태어난 그는 고향에 산업단지가 들어선 것에 대해 겸연쩍어했다고 한다.

경부고속도로는 구미시 한복판을 종단한다. 고속도로의 동쪽에 산업단지가 들어서 있어서 물류의 중심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국가 주력산업이던 대구 섬유산업과 연계한 수출전략산업 육성을 목표로 공단을 열었다. 가까운 대구의 풍부한 인적자원과 양질의 낙동강 수자원을 이용할 수 있어서 최적의 공단 조건이다.

1990년대 들어서는 전자산업 중심으로 공단이 재편됐다. 섬유산업으로 시작한 구미공단은 가전에서부터 반도체, 휴대전화, 디스플레이 등 대한민국 전자 수출의 고향이 됐다. 한 때는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을 중심으로 한 구미공단 수출액이 우리나라 전체 수출 흑자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구미산업단지의 수출은 2013년 367억 달러로 정점을 찍었다. 이후 2015년 273억 달러, 2018년 258억 달러로 점차 줄어서 지난해에는 232억6000만 달러로 추락했다. 이렇게 수출이 준 것은 경제환경의 변화 때문이다. 삼성, LG 등 대기업이 저임금의 해외나 물류와 금융이 용이한 수도권으로 옮겨가는 바람에 공단 가동률과 수출 실적이 동반하락하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근로자 수도 크게 줄었다. 지난 2015년 10만2240명이던 근로자 수가 2017년 9만5153명으로 줄었고, 지난해에는 8만6828명으로 9만 명 선이 붕괴 됐다. 최근도 코로나19로 인한 급격한 근로자 감소로 8만 명 선마저 위협받고 있다. 입지가 사실상 결정된 통합신공항의 가장 큰 수혜를 입을 곳이 구미산업단지라고 한다. 구미산업단지가 부흥의 날개를 달고 우리나라 수출을 다시 주도할 지 기대된다.이동욱 논설실장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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