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천 최병국 고문헌연구소 경고재대표·언론인

이달 초 역대급 폭우로 전국적으로 피해가 컸던 상황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은 구례 등 호남지역을 맨 먼저 찾은 정당은 미래통합당이다. 지난 총선에서 호남지역을 싹쓸이한 더불어민주당이 아닌 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 지도부가 섬진강 방류로 읍 전체가 물속에 잠기는 지역 역사 이래 최대의 피해를 입은 구례읍 주민들을 찾아 위로했다. 이튿날에도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와 소속 의원들이 구례읍에서 수해복구 작업을 한 데 이어 다음날엔 남원을 찾아 봉사활동을 폈다.

19일에는 김종인 위원장이 5·18 민주묘지를 찾아 무릎을 꿇고 “부끄럽고 죄송하다”며 사죄를 했다. 보수정당 대표가 5·18 민주묘지에서 무릎을 꿇은 것은 처음이다. 81세 노(老)정객의 ‘무릎 사과’에 현장에 있던 광주 시민들이 박수로 호응했다. 지난 4·15 선거에서 영남권 중심 정당으로 당세가 전락한 통합당을 반등시키기 위한 김 위원장의 호남과 중도로의 좌클릭을 통한 외연 확대 시도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반복했던 삭발, 막말, 강경투쟁, 반대를 위한 반대도 이제 통합당에서 찾아볼 수가 없을 만큼 당의 근간과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지난 5월 통합당에 구원투수로 영입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체제가 출범한 지 3개월 만에 ‘김종인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정당 지지율에서 지난주는 창당 이래 처음으로 민주당을 앞질렀으며 이번 주 지지율도 0.8%포인트 오른 37.1%로 상승세를 이었다. 당내에서도 “동진(東進)만 했던 통합당이 김종인 비대위체제가 출범한 이후 서진(西進)을 하면서 전국 정당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김 위원장이 최근 추진하고 있는 정강 정책에는 기본소득, 기회와 공정, 경제혁신, 경제민주화 같은 진보적인 내용이 많이 수용되어 있다. 이런 영향 등으로 돌아앉았던 중도층의 지지도가 돌아오면서 통합당의 지지율이 한때 민주당을 역전시키는 상황이 됐다. 김 위원장은 “통합당 지지율의 3분의 1은 민주당의 실수 덕”이라고 했다. 이런 발언이 ‘김종인식 겸손’이다.

요즘 민주당이나 진보 쪽 인사들의 언어는 상대에 대해 거의 ‘해악’ 수준에 가깝다. 최강욱 의원은 총선에 당선되자마자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도록 갚아 주겠다”고 했고 임은정 검사는 최근 검찰인사로 떠나는 선배 검사장 등 뒤로 “간교한 검사”라는 비수 같은 말을 꽂았다. 민주당 최고위원에 출마한 이원욱 후보는 “임명받은 권력이 선출 권력을 이기려고 한다. 개가 주인을 무는 꼴이다. 권력을 탐하는 윤석열을 끌어내려야 한다”고 했다. 이런 난폭한 언어들은 오히려 중도층의 거부감과 역풍을 부른다.

요즘 통합당에서는 이런 거친 언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지지율 상승은 청와대와 여당의 헛발질 정책에 따른 반사이익 때문만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여의도 정가에서는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말솜씨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가 하는 말은 바로 글이 되는 몇 안 되는 정치인 중 한 명이다. 그는 절대로 직설화법으로 상대를 곤경에 처하게 하지 않는다. 김종인의 언어는 메시지가 선명하다는 평이다. 이에 비해 표현은 점잖다.

최근 “천박한 도시” “×× 자식” 같은 극단적 단어를 내뱉은 이해찬 민주당 대표와는 격이 다르다. 동그라미도 아니고 세모도 아닌 ‘황세모’라는 별명이 붙은 황교안 전 대표나 “엄중히 지켜보고 있다”는 답답한 말만 되풀이해 ‘엄중’이란 별명을 듣는 이낙연 전 총리와도 비교가 된다. 김 위원장은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각을 세우며 총질하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향해 “인성의 문제”라고 한마디로 저격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김현미 국토부 장관에겐 “능력 없으면 스스로 그만두라”고 했다. 대놓고 “해임 시켜라”며 주먹을 휘두르는 것보다 당사자들에겐 훨씬 더 아프다.

문 대통령이 조국 전 장관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는 발언을 했을 때도 그는 “문 대통령은 국민의 고통에는 진짜 미안한 마음이 없는지 묻고 싶다”고 반문하는 것으로 끝냈다. 최근 김원웅 광복회장의 광복절 축사에 대해서도 “그런 사람이 어떻게 광복회 행사장에 나와서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됐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고(高)단위급 대응이다. 진보 쪽의 ‘친일 대 반일’의 프레임을 되치기해 중도층으로 하여금 그런 편 가르기에 거부감과 불편함을 느끼도록 만드는 고도로 계산된 발언으로 볼 수가 있다. 그래서 역대 정권이 그를 삼고초려 한 이유다. 앞으로 그의 행보에 기대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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