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영 경남대 교수·정치학 박사
이재영 경남대 교수·정치학 박사

김원웅 광복회 회장이 애국가 교체를 주장한다. 8·15 경축사, 20일 국회소통관 기자회견, 21일 CBS ‘시사자키’ 대담 등. 이유는 작사자 안익태의 친일 행적이다. 8월 19일에는 25개 독립운동단체, 20일에는 광복회와 국가만들기시민모임 등 시민단체도 여기에 가세하고 있다. 정치인도 찬반 의견을 내고 국민도 관련 기사에 댓글을 달면서 갑론을박(甲論乙駁)하고 있다. 사실상 애국가 교체는 국민의 동의가 가능한 사안이다. 작사자의 친일, 표절 의혹, 시대성 부족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화(國花)도 함께 교체해야 한다는 점이다. 무궁화가 국화가 된 데는 특별한 근거나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애국가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후렴구가 생긴 이후부터, 무궁화가 국화로 인정받기 시작했을 뿐이다.

애국가의 작사자는 미정이다. 친일파 윤치호와 독립운동가 안창호가 거론되고 있기는 하다. 두 사람에 대한 기록이 풍부한 상황에서, 누구인지 알 수 없다면 둘 다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누가 지었는지도 모르는데 애국가로 고집할 이유가 있을까? 작곡자는 안익태이다. 1930년대 이전에는 민족주의자, 이후부터 반민족주의자, 해방 후 다시 민족주의자로 전향한 인물이다. 대표적으로 1938년 일왕 찬양가 ‘에텐라쿠(月天樂)’를 작곡하고 지휘했으며, 1942년 베를린에서 개최된 ‘만주국 건국 10주년 경축 음악회’에서 ‘만주국환상곡’을 지휘했다. ‘안익태의 회귀’를 인정한다고 할지라도,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불가리아 민요 ‘오 도브루자의 땅이여(О, Добруджански край!)’의 16소절 중 8소절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산 무궁화가 어떻게 국화가 되었을까? “윤치호 등의 발의로 양악대(洋樂隊)를 비롯해 애국가를 창작할 때 애국가의 뒤풀이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구절이 들어가면서 무궁화는 조선의 국화가 되었다”(동아일보 1933년 10월 21일). 윤치호는 1930년대부터 일본에 협력하기 시작해, 1940년대에 친일파로 전향한 인물이다. 게다가 무궁화는 일본이 신성시하는 꽃이다. 일본에서 무궁화 관련 문화재 약 45건, 무궁화 관련 신앙 약 12만8000개, 1911년 초등학교 1학년 음악 교과서부터 2018년 단카(短歌) 월간지까지 무궁화 관련 노래 약 8000곡, 시문학 장르인 하이쿠(癸句)에서 무궁화 관련 작품 약 693개이다(강효백, 해럴드경제 2019년 4월 27일). 반면 우리나라에서 무궁화 관련 문화재, 노래, 문학작품은 손에 꼽을 정도다.

국가 차원의 애국가 교체시도는 여러 번 있었다. 1948년 9월 제헌의회에서 ‘국가(國歌)와 국기(國旗) 제정에 관한 건’이 상정 후 철회되었다. 남한 단독변경은 영구분단을 의미하므로, 통일될 때까지 논의하지 말자는 이유였다. 1960년 9월 민주당 소장파 의원들이 ‘새로운 애국가 제정’을 주장했고, 문교부 장관이 호의적으로 접근했으나 무산되었다. 5·16군사정변 때문이었다. 1982년 10월 ‘국가제정추진위원회’가 발족하였지만,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당시 ‘하느님이 보우하사‘라는 가사에 자부심을 가진 기독교계의 반대가 극심했다고 알려져 있다. 국가 차원의 국화 교체시도는 없었다. 무궁화가 전국적 자생식물이 아니며, 윤치호 등 일부 취향을 반영했고, 일본에서 널리 사용된다는 이유로 교체해야 한다는 산발적 주장이 있을 뿐이다.

국가와 국화를 교체하는 작업은 간단하다. 법률 제·개정 절차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국가와 관련해서는 「대한민국국기법시행령」 제19조에 “국기의 게양식 및 강하식을 애국가의 연주에 맞추어 행한다”라는 내용이 있으며, 대통령 훈령인 「국민의례 규정」에 ‘애국가 제창’이라는 항목이 있을 뿐이다. 국화와 관련해서는 정부의 시행령이나 대통령 훈령조차 없다. 관습 및 관행적으로 무궁화가 국화의 지위를 인정받고 있으며, 정부 역시 무궁화를 국화에 준해서 대우하면서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국민의 여론을 수렴해서 국가와 국화를 교체할 수 있다. 백번 양보해 ‘안익태의 회귀’를 인정하고 ‘표절’을 부정한다고 할지라도, 100년 전에 만들어진 애국가가 시대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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