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규 문학평론가
한정규 문학평론가

멀지 않은 지난 인류사만 보아도 세계를 자기 손안에 넣으려고 했던 많은 독재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결국 불행한 사람으로 실패자로 몰락했다.

중국의 진시황제가 그랬으며 20세기 독일의 히틀러가 소련의 스탈린이 프랑스 나폴레옹이 그랬다. 그들은 세계를 자신의 소유물로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만의 욕심이었고 착각이었다.

세계는 불가사의한 신비스러운 것이다. 제아무리 능력 있는 사람이라도 어떤 특정인의 마음대로 지배할 순 없다.

모든 사물은 손해를 받음으로 이익을 보고 이익을 받음으로 손해를 본다는 현상계법칙이 형성된다. 사람이 숨을 쉬는 것도 한계가 있다. 그 들숨이 한계에 다다르면 내뱉는 숨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독재자들은 그런 자연현상을 무시하기일 수다. 자기 능력만 믿고 자연법칙의 한계를 무시한다. 그런 태도가 자신은 물론 인류 모두를 불행에 빠트린다.

바닷가에 널려 있는 굴 껍데기를 모아 쌓아 올려 보아라! 일정 수준에 다다르면 꺾인다. 자연법칙의 원리를 결코 극복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성인 또는 현명한 자는 일상생활에서 조화를 벗어나는 일을 하지 않는다. 격심한 분노를 버리고 자애심을 가지며, 사치스러운 생활도 하지 않고 검소한 생활을 하며, 남보다 앞서겠다는 교만한 태도를 버리고 겸손한 태도를 가졌다. 반면 독재자, 어리석은 자는 현명한 자와 다르다.

문제는 보통사람들은 그것을 깨우치지 못하고 권력을 쥐었다 하면 그 권력이 영원할 것으로 착각을 하고 휘두르는 재미에 빠진다.

그런 어리바리한 지도자의 권력을 이용 자기 이익을 채우려는 얼간이들, 쉬파리들이 둘러쌓고 사리 분별 못 하게 하고서 불에 달군 철판 위 살아 있는 메뚜기 뛰듯 뛰게 한다.

먼 훗날 미래세대에 이름 남기기로 하면 세종대왕, 링컨 대통령, 황희정승, 예수, 공자, 장자, 석가모니, 에디슨같이 남길 수도 있다.

이름을 후세에 남기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니다. 살아 있는 동안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있으나 마나 한 사람,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 반드시 있어야 할 사람,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그중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 돼서는 안 된다. 반드시 필요한 사람, 있어야 할 사람이 돼야 한다. 죽음 후를 위해 터무니없는 욕심 그 때문에 사회가 용서하지 않는 짓 해서는 안 된다.

대단한 권력 보잘것없는 권력의 위치에서 살다 종말에 교도소 가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지탄받으면 그것 못난 짓이다. 하지 않음만 못하다.

죽음 뒤에 쏟아지는 비난 받는 그런 권력 탐내서는 안 된다. 떳떳한 죽음, 편안한 죽음, 애도는 받지 못해도 죽음 뒤 욕하는 소리 들리지 않은 그런 죽음이 돼야 한다. 위정자로서, 지도자로서 세상에 가장 불행한 사람하면 죽음 뒤에 욕을 듣는 사람이다. 지도자는 눈을 감고 귀를 막고 간신에 둘러싸여 그들하고만 즐겨서는 안 된다. 지도자는 눈은 가급적 크게 뜨고 귀는 활짝 열어 많이 보고 많이 듣고 보다 많이 생각하고 신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독재자 말 듣는다. 제한된 사람들과만 소통하며 다수 국민의 뜻을 거스른 지도자 그가 독재자이지 독재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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