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직전
바람 없음이 태풍의 눈이듯
그대 없음이 이 세상의 눈이다.
선창에 물이 들어왔다 나가도
매어 논 배들이 흔들리지 않는다.
파도 소리 하얗게 밀려들어도
축대 너머로 물보라가 뜨지 않는다.
도처에 그대가 없다.

바람이 간판들을 쓰러트리고
나무들이 타오른다.
말(言)들이 속으로 들어가고
말의 건물들이 타오른다.
비상계단 하나가 거짓말처럼 날아올라
지그재그로 하늘에 걸린다.
계단 끝에 그대 없음!
아 지상의 속모습.


<감상> 내가 태풍의 눈 안에, 혹은 블랙홀 안에 있기에 빠져나갈 수 없고 고요하기만 하다. 그대가 없는 이 세상에서 나는 바람과 빛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 그대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기에 언젠가 내 마음이 회오리치거나 폭발하고 말 것이다. 내가 쏟아낸 말들이 용오름 현상을 일으켜 나무와 건물을 타오르게 하고, 하늘까지 닿는다. 끝까지 올라갔으나 그대의 모습을 찾을 길 없어 주저앉고 만다. 결국 내 마음은 태풍의 눈, 혹은 블랙홀 안에 갇혀 나오지 못한다. 지상의 속은 텅 비어 어둡고 적막하다. 그대가 한 줄기 바람과 빛으로 찾아와 주었으면 좋겠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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