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혁 학강미술관장
김진혁 학강미술관장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위작 시비는 있어 왔다. 미술작품에 있어서도 예부터 심심찮게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조선시대에도 글씨나 그림에서 대필이나 모작이 있었다. 조선말기 유명한 서화가들도 자신들 보다 앞선 시대의 대가인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고송유수관 이인문 등을 흉내 내어 가짜를 만들어 사대부에게 팔아서 며칠 동안 유흥을 즐겼다는 기록이 전한다. 근대에 와서도 가르치는 선생의 필치나 색채를 흉내 내어 방품의 서예나 회화작품이 많이 유통된 일이 있다.

우리는 추사 김정희의 서예작품이 지금도 버젓이 메이저경매에 나오는 것을 보면 일부는 위작의 방품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서양화의 경우에도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이우환 등의 현대작가의 가품이 나오기도 하였다.

며칠 전 대구 출신의 최초 서양화가 이여성의 기초자료 조사를 위해 전부터 알고 지낸 이천동 문화거리의 고미술 가계에 들렸다. 그곳에서 이여성의 아호가 있는 산수화 1점을 보기 위해서였다. 마침 한가하여 초로의 주인장과 담소를 나누었다. 내용 중 충격적인 사실을 전해주었다. 주인장 왈 “오래 전에 청정 이여성의 사인이 있던 유화소품이 이인성의 그림으로 변조되어 판매되었습니다.” 라고 놀랄만한 얘기를 전해주었다. 전하는 얘기로는 십여 년 전 앞산을 배경으로 고목을 멋지게 그린 유화소품이 아래쪽에 청정(靑汀)이라는 사인이 있어 이여성의 작품이라고 확인되어 그 곳의 미술상인 몇 명이 함께 보았다고 전한다. 당시 이여성의 그림 가격은 얼마 되지 않는 시절 이였다고 했다. 그림의 표면 상태도 회손 되어 서울의 복원 수리 전문가인 A씨에게 맡겼으나 사인이 지워져서 희미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그림 소장자는 그 부분을 지우고 반대편에 근대 서양화의 대가 이인성의 사인을 넣어 서울에 비싼 값에 판매하였다는 믿기 어려운 과거사를 말하였다. 픽션 인지 팩트 인지 혼란스럽지만 말하는 정황과 목격자의 실명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사실로 믿고 싶다. 비슷한 시대의 근대작가 작품을 가장 인기 높은 화가로 바꾸어 비싼 가격에 판매되는 것은 거간상들 중 가끔 있는 사실이였다. 하지만 이러한 팩트는 한국미술사에서 이여성의 존재가치를 너무도 모르는 무지의 소치이자 범죄라 하겠다.

청정 이여성의 산수화, 아름다운 고미술화랑 소장품

청정 이여성은 대구 최초의 서양화가이자 독립운동가로 만약 이 작품이 1923년 11월 12일에 열린 대구미술전람회에 출품된 이여성의 16점 작품 중 한 점이라면 대구경북 미술사를 다시 써야 할 것이다. 또한 한국근대서양미술사의 중요한 보물이 될 것이기도 하다. 너무나 아쉬운 내용의 이야기였다.

일본 유학시절 발표된 이여성의 대구 뇌경관에서 열린 최초의 서양화 작품들은 모두 망실되어 현재까지 발견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대구미술관에 기증된 이인성의 작품에서도 여러 가지 위작 시비가 있었다. 근대 서화가 서병오의 젊은 시절 문인화 12폭 병풍 작품도 유명한 TV 감정위원이 실수하여 진품을 위작으로 판단한 해프닝도 있었다. 올해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에 학강미술관에서 빌려준 서병오 작품도 서울의 서화전문가들이 잘못 감정했다가 진품으로 바뀌어 전시되는 우여곡절도 있었다. 참으로 웃지 못할 사건이 많은 미술계이다.

돈이 되면 사람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만든다는 중국에서도 모든 미술품에 여러 가지 고증이 되어야 하며 일본과 서구의 미술계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나기도 한다. 보다 폭 넓은 경험과 안목으로 미술품을 감식하고 미의 가치를 창출해야 될 것이다.

이번 여름 경북 칠곡에 위치한 수피아미술관에서 필자의 전시회가 한 달 간 진행되었다. 오픈 날 관람객 중 VIP 한 분이 “학강선생이 직접 그린 것 입니까?” “네.” “가수화가 모씨처럼 조수가 대신하여 그린 것은 아니겠지요.” “헐…” 휴먼포스터모더니즘시대에 이런 소리 저런 소리가 들리는 지금의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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