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태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원태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2016년 국민투표를 통한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 즉 브렉시트(Brexit)의 주역(主役)을 맡았던 나이젤 파라지(Nigel Farage)는 영국을 유럽에서 빼내겠다는 단일쟁점으로 1993년에 반(反)이민주의를 내세운 영국독립당(United Kingdom Independence Party)을 공동창당하였다. 당시 영국 내에서의 반(反)유럽 및 반(反)이민 정서가 서서히 커져 가고 있던 시류(時流)를 간파한 모험이었다. 하지만 유럽연합의 운영방식에 대한 불만이 있다고 하더라도 유럽연합에서 뛰쳐나온다는 것만큼은 상상할 수 없었던 영국의 핵심 위정자들은 유럽에 대한 영국 시민들의 불만과 반감에 대해 근본적으로 대처하는 데에 소홀하였다. 대신 파라지를 극우 포퓰리스트(populist)로 낙인찍고 성차별, 인종차별 및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영국독립당원들을 ‘미친놈들(fruitcakes)’과 ‘정신병자들(loonies)’이라고 공격하는 전략을 채택, 영국인들의 반(反)유럽 정서 증폭에 대한 책임을 파라지에게 떠넘김으로써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고자 하였다. 유럽연합의 커져 가는 권한에 분노한 영국 시민들의 우려를 불식시켜 줄 실효적인 정책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많은 영국인들의 ‘가려운 부분’을 빡빡 긁어주었던 파라지의 저급하고 상스럽기까지 한 급진주의적 메시지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에 창당 당시 ‘정신 나간 사람들로 이루어진 극소정당’ 취급을 받던 영국독립당은 199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7%의 득표율 확보를 시작으로 200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16.5%의 득표율, 그리고 201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27.5%의 득표율을 확보함으로써 영국 정계의 주요 세력으로 부상하였고, 2016년에 브렉시트를 성공시킴으로써 영국의 운명을 바꾸어놓았다.

이번 ‘광화문 집회발’ 코로나 확산의 주범으로 지목된 전광훈 목사와 그의 교인들이 집권여당과 언론의 집중 포화를 받고 있다. 8월 12일에 사랑제일교회에서 첫 확진자가 나왔음에도 교인들이 대거 집회에 나와 연쇄 감염을 일으킨 것은 무책임과 무모함의 극치를 보여준 행태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8·15 광화문 집회에 대한 집권여당의 반응만 살펴보면 마치 사랑제일교회 소속 교인들만 참가했나보다라는 착각이 들 만큼 관심의 초점이 전 목사에게만 맞추어져 있다. 광화문 집회에는 그 교회 교인들만 나온 것이 아니다. 현 정부의 비상식적 부동산 정책, 징벌적 세금 폭탄, 청와대 참모들의 부동산 위선, 야당을 무시한 여당의 입법 폭주, 여당 측 인사들의 연이은 성추문, 코로나 사태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 등에 분노를 표출하고 정부 정책의 변화를 종용하기 위하여 수만 여명의 시민들이 전국 각지에서 올라 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 수많은 집회 참가자들 울분과 호소가 코로나 확산에 대한 두려움 및 전 목사와 일부 기독교 세력에 대한 비난에 파묻히면서, 코로나 시국이라는 초유의 사태에도 집회에 참여한 이들의 절박함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고민과 논의 또한 입 밖으로 내기가 어렵게 되었다. 국민의 시선을 다른 데로 돌렸다고 하여 집회 참가자들이 절규하는 이유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

영국 정계의 주류 인사들은 나이젤 파라지를 악마화(惡魔化)함으로써 곪아 터지기 일보직전인 영국 사회 내의 불만과 분노를 덮어버리고자 하였으나, 그것이 오히려 파라지를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인 중 하나로 세워주는 데에 일조하였다. 마찬가지로 전광훈 목사의 명백한 잘못을 강조하는 것만으로 지금 우리 사회 내에서 곪아 터지기 일보직전인 국민의 불만과 분노를 덮어버리고자 한다면, 결국 제2, 제3의 전광훈이 등장할 수 있는 판을 깔아주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진정 국민을 위한다는 정부의 책임 있는 대응은 무엇이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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