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양성대장염 재발”…근현대 최장기 독주 정치 종지부
후임자 경쟁 본격화…아베 “영향력 행사하지 않겠다”
야스쿠니신사 참배하고 징용판결에 반발한 아베…개헌은 불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8일 도쿄의 총리 관저로 들어가고 있다. 현지 언론은 아베 총리가 건강 문제로 총리직 사임을 표명했다고 이날 일제히 보도했다.연합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건강 문제를 이유로 28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이에 따라 일본 근·현대 정치에서 최장기간 이어진 독주 체제가 곧 막을 내리게 됐다.

집권 자민당 각 파벌은 차기 총리 자리를 목표로 본격적인 경쟁에 돌입했다.

거의 8년 만에 일본 총리가 교체되면 한일 관계에도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아베 “궤양성대장염 재발…총리 사임하겠다”

아베 총리는 28일 NHK로 생중계된 가운데 총리관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8월 초순 궤양성대장염의 재발이 확인됐다”며 “총리직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중학교 때부터 궤양성대장염에 시달렸으며 1차 집권기(2006년 9월 26일∼2007년 9월 26일·366일) 때 이 병을 이유로 사임한 바 있다.

그는 현재 사용하고 있는 약과 새로운 약을 투여하기로 했고 이번 주 초 검사에서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으나 어느 정도 계속 투약할 필요가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아베 총리는 “병과 치료를 떠안고 있어 체력이 완전하지 않은 고통 속에서 중요한 정치 판단을 그르치는 것, 결과를 내지 못하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 국민 여러분의 부탁에 자신을 가지고 답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닌 이상 총리의 지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며 사직을 결심한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올해 6월 건강 검진에서 궤양성대장염 재발 징후가 보인다는 지적을 받았고 이달 17일과 24일 게이오대(慶應大)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것을 계기로 24일 사임을 결심했다고 덧붙였다.

다만 즉각 사임하지 않고 후임자가 결정될 때까지 직을 계속 수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건강 이상설은 이달 초 일본 주간지 ‘플래시’가 아베 총리가 집무실에서 피를 토했다고 보도하면서 불거졌고 이후 병원 방문 사실이 알려지면서 확산했는데 한 달도 안 돼 사의 표명이라는 결말을 맞았다.

일본 주요 언론은 이날 호외를 찍어냈고 NHK 등 일본 방송사는 특보를 편성했다.

정치권에서는 전혀 예상을 못 했다며 “경악”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 7년 8개월 이어진 최장기 정권 일단락…아베 1강·우경화

아베 총리는 2012년 12월 26일 내각을 출범한 후 7년 8개월 넘게 연속 재임하며 일본의 역대 최장수 총리 기록을 새로 썼다.

그의 총리 재임 기간은 1차 집권기까지 포함해 8년 8개월을 넘겼다.

만 52세에 전후 최연소 총리로 취임했다가 1년 만에 조기 퇴진했으나 5년 뒤 재집권한 아베 총리는 ‘아베 1강’(强)이라고 불리는 독주 체제를 유지해 왔다.

총리 보좌 기관인 총리관저가 인사권을 틀어쥐고 관료들에 대한 압도적인 장악력을 발휘했으며 당내에서도 아베 총리에게 이견을 표명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수년간 이어졌다.

아베 정권은 특정비밀보호법 제정, 집단자위권 법제화 등 여론이 반대하는 정책도 의석수의 우위를 앞세워 밀어 붙여왔다.

최근에는 공적 행사인 ‘벚꽃을 보는 모임’을 사유화했다는 의혹이나 측근의 돈 봉투 선거 혐의가 불거지면서 정권의 도덕적 타락이 심각해졌다는 지적을 사기도 했다.

7년 8개월간 이어진 무소불위의 정권도 건강 문제의 벽을 넘지 못해 결국 막을 내리게 됐다.

최근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책에 관한 여론의 비판이 고조해 지지율이 재집권 이후 최저 수준까지 하락하는 등 아베 총리의 정치적 구심력도 약해진 상태였다.

아베 총리는 일본이 집단자위권을 행사하도록 안보법제를 변경했고 개헌을 필생의 과업으로 꼽았다.

하지만 여론 악화와 코로나19 확산 등의 영향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물러나게 됐다.

그는 이날 회견에서 납치 문제 해결, 러일 평화조약 체결, 헌법 개정 등을 실현하지 못한 것을 “통한의 극치”, “장이 끊어지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경제면에서는 ‘아베노믹스’를 앞세워 디플레이션으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했으나 역시 코로나19로 인해 최근 성장률은 전후 최악을 기록했다.

아베 총리는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해 국제 사회에 파문을 일으키고 한국 법원의 징용 판결에 반발하는 등 역사 문제에 관해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그가 재집권한 최근 수년 사이에 일본 사회의 우경화는 매우 심각해졌다.

따라서 아베 총리가 물러나고 새로운 총리가 취임하면 한일 양국 관계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도 주목된다.

이와 관련해 한일 관계의 한 소식통은 “문재인 대통령과 일본의 차기 총리 사이에 활발한 대화가 이뤄질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불붙는 차기 경쟁…아베 “영향력 행사 안 할 것”

8년 만에 집권 자민당 총재가 교체가 기정사실화 된 가운데 경쟁 레이스가 본격화했다. 그간에도 총재 선거가 있었지만 아베 총리가 자리를 지켰다.

의원 내각제인 일본에서는 전체 의석의 과반을 점한 자민당 총재가 사실상 일본 총리가 된다.

후임 총리 후보군으로는 고노 다로(河野太郞) 방위상,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자민당 간사장,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자민당 정조회장 등이 꼽힌다.

노다 세이코(野田聖子) 전 총무상도 의욕을 보이고 있고 일각에서는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외무상을 거론한다.

아베 총리 사의 표명에 주요 주자들이 잇따라 출사표를 던졌다.

기시다 정조회장은 차기 총재 선거에 출마한다는 생각에 “변화가 없다”고 이날 기자들에게 말했으며 앞서 출마 의향을 표명한 노다 전 총무상 역시 “생각에 변화가 없다”고 반응했다.

2012년 9월 자민당 총재 선거를 비롯해 두 차례 아베 총리와 대결한 이시바 전 간사장은 “20명의 추천이 있으면 해야 한다. 늦지 않은 시기에 판단하겠다”고 출마를 시사했다.

이르면 내달 중에 자민당이 새 총재를 결정하고 이어 차기 일본 총리도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베 총리는 후임 총재 선출 방식에 관해서는 “(자민당) 집행부에 맡겼으므로 내가 말할 것이 아니다”며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뜻을 회견에서 밝혔다.

또 후임자로 염두에 둔 인물이 있느냐는 물음에 “누가 좋다는 것을 내가 말할 것이 아니다”고 말을 아꼈다.

연합
연합 kb@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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