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는 멀어지고 그 사이 맨얼굴로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방에선 선풍기가 돌아가고 두루마리 화장지로 가끔 콧물을 닦으며 지나간 사람을 지나온 사람처럼 불렀다
뒤돌아보는 사람은 모두 지나온 사람
애써 웃어 주는 사람과 그 웃음 뒤의 막막함에 숨는 일로 잠시 웃어 보였으나
여름은 발에 걸리지 않아 부를 이름이 없고 수제비 같은 맨얼굴은 수시로 뚝뚝 떨어졌다
간밤엔 기억에도 없는 일을 하였다가 기억에서 사라진 건 아닐까 마신 술에 속아 울면서
수용하였다
간신히 입 다문 정든 수용소와 그 너머 안부까지
한밤중에 일어나 물을 마시며 여름을 보았다는 사람도 있지만 그도 속았다는 걸 모르는 거다
빌려 온 슬픔을 되돌려 보낼 수 있어 한여름은 없었다
그래서 안녕

<감상> 지나간 시간과 사람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내 눈 앞에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아픈 기억일수록 지나온 길이지만 자주 뒤돌아보는 경우가 많아진다. 파도처럼 뒤에서 출렁이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웃음 뒤의 막막함, 그리움 뒤에 쓸쓸함, 기억 속에 아픔들은 왜 맨얼굴을 하고 다가오는 걸까. 대부분 좋은 기억들은 사라지고, 아픈 것들만 남아서 기억되는 걸까. 내가 빌려온 슬픔을 되돌려 보낼 수 없다면 한여름은 계속될 것이다. 여름이 한참 지났음에도 한여름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여름을 보았다고 말한다. 이제 그만 슬픔을 되돌려 보내자. 그러면 한여름과 이별을 선언할 수 있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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