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태천 경운대 초빙교수
한태천 경운대 초빙교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발표에 의하면 9월 1일 0시 기준, 235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여 지금까지 총 2만 명을 넘었고, 현재 중증환자가 104명에 이른다. 그러나 다행히도 확진자 수가 5일간 연속 감소하고 있다. 정부는 지금의 사태를 ‘국난’으로 규정하고, 이의 극복을 위하여 모든 국민이 동참하여 거리두기 등 방역 수칙을 지켜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서울시는 8월 30일부터 9월 6일까지 ‘천만 시민 멈춤 주간’으로 설정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2.5단계로 격상하였다. 대다수 국민은 정부와 서울시의 방역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으며, 의료진들은 온몸으로 방역에 대처하고 있다. 모든 국민은 다시 창궐하는 코로나19가 세계 제일을 자랑했던 K방역과 최저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을 물거품으로 만들지 않기를 갈망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국민의 여망과 정부와 의료인들의 피나는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집단 이기주의적 행동이 있어 그 아쉬움은 글로 이루다 표현하기 어렵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위협받는 엄중한 시점에도, 자신들의 이해와 관련한 주장만 내세우며, 방역에 비협조적인 특정 교회가 있다. 정부 정책이 자신들의 뜻과 다르다고 의료 현장을 떠나 휴진하는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이 있다. 평범한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집단 이기주의적 행동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하다.

대구 사랑의교회발 코로나 확진자가 30명을 넘었다. 광화문 행사 참석을 숨기고, 확진자가 자가격리 장소를 이탈하여 거리를 활보하고, 인솔 책임자가 명단 제출을 거부하며 비협조적이거나 방역을 거부하고 있다. 지역 언론들은 일제히 “사랑의교회발 집단감염이 대구 재유행의 신 뇌관”이 될까 우려하는 보도를 하고 있다. 우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지난 3월 신천지발 코로나19가 대구를 강타할 때, 평일이면 지나가는 사람과 서로 어깨를 부딪쳐야 통행이 가능할 정도로 인파가 붐볐던 대구 동성로 거리가 유령의 거리처럼 설렁했던 것을. 한 달 동안 가겟세도 벌지 못했던 소상공인 자영업자는 가슴을 치며 통탄했다는 것을.

교회 이름 앞에 붙은 ‘사랑’은 이웃은 죽든지 말든지 자신들만을 위한 사랑을 한다는 의미가 아니지 않은가. 4살짜리 유아원 아이들도 온종일 마스크를 끼고, 정해진 칸막이 속에서 생활하며, 방역 수칙에 따르고 있다. 작금에 이루어지고 있는 이 비상식적인 상황에 대해, ‘교회가 저렇게 해도 되느냐?’라고 아이들이 묻는다면, 유아보다 못한 어른들의 행동에 대해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예배는 생명과도 같은 것이라 존중되어야 한다.”라는 어느 신도의 말이 백번 옳다고 하더라도, “종교적 신념이라 정부의 간섭이 옳지 않다.”라는 것을 모두가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다시 창궐하는 코로나19가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고 국가 경제를 동토의 땅으로 몰아넣고 있는 이 엄중한 시기에, 정부의 방역 활동에 비협조적인 것은 교회가 취할 행동이 아닌 듯하다. 한국 사회에 사랑과 평등 정신을 도입하여 반상의 제도를 무너뜨리고, 탄압 앞에 맞서 순교한 선교사들의 정신까지는 아니더라도, 하루빨리 교회 본연의 ‘사랑’ 정신으로 돌아가 정부의 방역 활동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교회가 되길 바란다.

설상가상으로, 서울을 중심으로 다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는 시점에, 전국의 전공의들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등의 정책에 반대하며, 지난 30일, 집단 휴진을 계속하기로 했다. 정책 입안 과정에 의료 전문인과의 충분한 논의가 없었다거나 열악한 수련 환경 개선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다시 전국을 강타하는 이 시점에, 정부가 코로나19가 종식되면 전면적인 재논의를 할 수 있다고 함에도, 정책의 ‘전면 철회’를 주장하며 진단 휴진을 계속하기로 한 것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1일, “지금처럼 국민에게 의사가 필요한 때가 없다.”라며, “의사가 있어야 할 곳은 환자 곁이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 중증 환자의 수가 갑자기 급증하고 있다. 의사의 손길이 부족하여 어쩌면 아까운 생명이 더 많이 죽어 갈 수도 있다. 의사는 환자 곁에 있어야 한다. 히포크라테스의 정신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떤 이는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말하는 사람은 한국의 의료 현실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정부가 기준을 내세워 의사에게 의료수가 과다청구자나 과잉진료자의 낙인을 찍고, 건강보험료를 축내는 죄인 취급하는 한국의 의료 현실에서 무슨 히포크라테스의 선서가 의미가 있느냐?”라고 반문하기도 한다. 이 말이 한국 현실에 정답이라고 하더라도 중증 환자가 급증하고 있는 이 시점에 전공의들이 집단 휴진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정부는 모든 정책을 원점에서 다시 논의할 수 있다고 했다. 이보다 더 무슨 답이 있을 수 있나. 한 명의 의료진이 더 필요한 지금 모든 전공의는 휴진을 철회하고 병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들은 노력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지 못한다고 불만을 품고 있을 수도 있지만, 국민은 그들에게 건강과 생명을 위탁하고 도움을 받으며, 그들을 존경하고 그들에게 감사하고 있다.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부러워하며, 비록 오를 수는 없다 해도 누구나 한 번쯤은 바라보았던 선망의 대상이다. 국민의 감사에 대승적 희생으로 보답해야 한다.

“예배가 생명 같으니 존중받아야 한다.”라는 말을 백번 존중하지만, “전문가와 충분한 논의가 없었다.”라는 말을 백번 공감하지만, 정부의 방역지침을 따르고, 의료현장으로 조건 없이 복귀하는 것만이 ‘국난극복’에 도움이 되는 국민이 해야 할 도리다. 더 이상의 집단 이기주의적 행동으로 국가 경제를 무너뜨리는 데 일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상기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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