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이 오고 불멸이 떠나가는 순간을
나는 아그네스라 부른다.

눈보라가 망쳐버린 공중,
그곳에서만 무지개는 아름다웠고

달의 하현엔 늘 폐허가 고여 있었다.
그대라는 오해를 사랑하였다.

길흉에 대한 예감은 지도가 아니었으므로
순록은 기별 없는 유목을 마쳤다.

신앙도 신념도 잃은 지 오래인데,
버드나무 안에 우물을 그려두었다.

하루 종일 추운 공중을 바라보다가
사는 일이 불륜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이별을 위로하기 위해
바람이 불어온다 쳐도

동쪽은 늘 똑 같은 동쪽,
누구나 한 번쯤 그대를 기다린 적이 있다.

번개처럼 천둥처럼 잉태한 아그네스를
나는 사치라 말한다.

눈보라를 걸어 귀향한 순록의 울음,
거울 속의 불면을 간질이고 있다.


<감상> 시인이 자신의 사전을 지닌다는 말은 사물을 나름대로 명명(命名)하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이 시를 굳이 머리로 이해하려 해서는 안 된다. 불멸과 멸종, 박해와 순수 사이를 그냥 ‘아그네스’라고 부르면 거기에 정서의 힘이 부여된다. 그대를 오해하는 것보다 더 달콤한 사랑이 있는가. 파라다이스와 폐허 사이에서 늘 같은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순록처럼 기별 없는 유목을 끝마칠 때가 되었다 해도, 나는 여전히 잠을 이루지 못할 듯하다.<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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