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혁 학강미술관장
김진혁 학강미술관장

2013년 봄, 관광차 대마도에 갔다가 낭패를 당했다. 부산에서 출발하여 이즈하라 항구에 도착하니 음식점이나 상점에 ‘한국인 출입금지’라고 되어있었다. 함께 간 일행들은 그 이유를 잘 몰랐지만 필자는 무엇 때문에 이런지 이곳 분위기를 알 수 있었다.

몇 달 전인 2012년 10월 초 새벽에 한국인 고미술품 절도범들이 대마도에 있는 3곳의 사찰과 신사에서 불상 2점과 대장경 1점을 훔쳤다. 대장경은 현지에서 버렸고 불상 2점만 후쿠오카로 가져갔다가 다시 부산항으로 들여와 부산·대구·서울에서 팔려고 모색하던 중 검거된 사건이 있었다. 문화재 전과 13범이 주범이고 4명의 공범들도 있었다. 운반책인 A도 공범으로 조사 중이라는 것을 언론을 통하여 알았다. 그중 운반책 A는 대구 이천동 고미술 경매장에도 가끔씩 나타나 일본에서 가져온 일본 근대고물들을 수백 점 씩 판매하기도 하는 고물전문 거간상 이었다.

알고 있는 사람이 언론에 나와서 깜짝 놀랐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신사의 지붕을 뚫고 들어가 8세기 신라 불상인 동조여래입상과 1330년대 제작된 서산 부석사의 금동관음보살좌상을 빼내었다. ‘열 명의 키퍼가 한 명의 도둑을 막지 못한다’는 옛말이 떠올랐다. 이러한 정황으로 말미암아 대마도 관광은 힘이 들었다. 이즈하라 사찰에 전시된 오래된 일본화를 관람하고자 전각에 들어가서 관계자에게 문의하니 단박에 안 된다며 빗자루로 바닥을 쓸다 빗자루로 위협하며 빨리 나가라고 소리쳤다. 안타깝기 짝이 없었다. 일본인들은 정리정돈과 보존을 잘하여 멋진 일본 고서화들이 많이 보였다. 기분은 언짢지만 불상절도 사건 때문이구나 하며 자리에서 물러 나왔다.

일본도자기 구다니야끼,부산을 통해 매일 수만개씩 통관된다. 학강미술관 소장품

조그마한 슈퍼에서도 한국인에게 물건을 판매하지 않는다는 곳이 여러 군데 보였다.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 되었다. 그러면서 한 편 이해도 되었다. 그 후 언론에 보도된 바 불상 중 동조여래입상은 일본 측에 돌려주었으나 서산 부석사의 금동관음보살좌상은 대전의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보관하며 유권해석 중이라고 한다.

이렇다 보니 오랫동안 거간상이나 경매를 통하여 구입한 필자의 소장품 중에도 장물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걱정 아닌 걱정을 하게 되었다. 주변의 거간상이나 화랑주인들이 고미술품이나 근현대회화작품의 감정을 필자에게 의뢰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고 미술품을 구매한 후 지나고 보면 실수 아닌 실수를 하여 진작이 아닌 방품을 구입하는 경우도 있다. 구입 초기에는 미술품 구입에 따른 월사금이나 수수료라고 생각되어 가능한 되돌리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고미술가게에서는 사고자 하는 사람의 안목으로 거래가 형성된다. 한 번 거래는 되돌릴 수 없는 것이 불문율이기 때문이다. 이것도 근대에 도입된 것으로 일제강점기 때부터 시작된 것이라 한다. 그러다 보니 극소수 거간상이나 고미술화랑에서는 비슷한 류의 회화작품을 변조하기도 하여 일반 미술애호가들을 울리기도 한다.

또 하나의 사건으로 희대의 ‘황자총통’ 사기 건이 있었다. 1992년 8월 여름 해군사관학교의 ‘충무공해전유물발굴단’이 통영군 한산도 해저에서 조선시대 총통을 인양했다. 조사결과 총통포신에 만력병신년(1596년) 6월 제조하였다는 명문의 ‘별황자총통’이라고 발표했다. 발굴한 지 17일 지나 문화재청의 전문위원들은 국보 274호로 지정하였다. 이어 진해해사박물관에 소장되었고 발굴단장 황모대령은 보국훈장을 받았다. 두 달 후 밝혀진 사실에 의하면 골동품상 신모가 제조한 것을 사서 바다에 빠뜨렸다가 마치 정말로 발굴한 양 건졌다. 이 과정에 해사박물관장도 관여했다고 한다. 1996년 6월 해군에서 이 사실을 공식발표 하여 전 국민에게 충격을 준 기막힌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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