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숙희 시집
경북 포항에서 활동하고 있는 서숙희 시인의 시조집 ‘먼 길을 돌아왔네’(푸른사상 시선 133)가 출간됐다.

이 시조집에는 부조리한 세계를 회피하거나 굴복하지 않고 자기애로써 극복하려는 시인의 모습이 주목된다. 시시포스가 자신의 운명을 부정하지 않고 바위를 굴려 올리는 형벌을 기꺼이 수행하며 신들에게 맞서고 있듯이, 시인은 자신의 운명을 적극적으로 끌어안고 삶의 동반자로 삼고 있는 것이다.

맹문재(문학평론가·안양대 교수) 교수는 작품 해설 중에서 서숙희 시인의 시조 세계에서 시시포스의 역설을 볼 수 있어 주목된다. 카뮈는 시시포스 신화에서 시시포스를 부조리한 상황의 전형적인 인물로 인지해온 기존의 관점을 뒤엎고 고통과 절망에 굴복하지 않는 인물로 해석했다. 삶에 대한 열정으로 신들을 멸시하는 것은 물론 죽음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형벌을 기꺼이 수행하는 존재로 이해한 것이다. 서숙희 시인의 작품에서도 부조리한 운명을 비관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끌어안고 지상에서의 삶을 추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카뮈는 시시포스 신화에서 신들의 형벌로 바위를 굴려 올리는 시시포스를 부조리한 영웅으로 해석했다. 이전까지의 문학이나 철학 등에서 시시포스는 가장 비극적인 존재로 인식됐다. 신들을 속인 사기꾼으로 또는 죽음의 신을 쇠사슬에 묶은 죄인으로 영원히 벌 받아야 하는 존재로 간주해 온 것이다. 그렇지만 카뮈는 기존의 해석과는 다르게 시시포스가 신들의 노여움을 사서 형벌을 받게 된 이유가 신들을 멸시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발견했다. 그리하여 시시포스가 죽음을 거부하고 지상의 시간에 바친 열정을 주목했던 것이다.

서숙희 시인
시시포스의 역설은 서숙희 시인의 작품 세계를 이루고 있는 토대이면서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주제의식이다. 시시포스가 바위를 굴려 올리는 형벌을 수행하면서도 자신의 운명을 부정하지 않고 기꺼이 신들에게 맞서고 있듯이 시인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지상에서의 동반자로 삼고 있다. 부조리한 상황에서 감당해야 하는 시간도 아픔도 슬픔도 인연도 신에게 의탁하지 않고 자기애로 품는다. 그리하여 작품들은 고뇌와 근심의 얼굴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지하의 세계에 갇혀 있다가 메마른 언덕을 넘어오는 봄과 같은 생기를 띠고 있다. 인간 소외가 지배하는 이 부조리의 세계에 굴복하지 않는 자기 실존의 세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고 평했다.

서숙희 시인은 포항 기계면에서 태어나 1992년 매일신문과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시조가 당선되고, 1996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소설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조집으로 ‘아득한 중심’, ‘손이 작은 그 여자’,‘그대 아니라도 꽃은 피어’, 시조선집으로 ‘물의 이빨’이 있다. 백수문학상, 김상옥시조문학상, 이영도시조문학상, 한국시조작품상, 열린시학상, 경상북도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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