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라는 말이 나를 망가뜨리는 것 같아
단 하나의 무언가를 갈망하는 태도 같은 것

다른 세계로 향하는 계단 같은 건 없다
식탁 위에는 싹이 난 감자 한봉지가 놓여 있을 뿐

저 감자는 정확함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싹이 아니라 독이지만
저것도 성장은 성장이라고,

초록 앞에선 겸허히 두 손을 모으게 된다
먹구름으로 가득한 하늘을 바라본다

하지만 싹은 쉽게 도려내지는 것
먹구름이 지나간 뒤에도 여전히 흐린 것은 흐리고

도려낸 자리엔 새살이 돋는 것이 아니라
도려낸 모양 그대로의 감자가 남는다

아직일 수도 있고 결국일 수도 있다
숨겨 놓은 조커일 수도
이미 잊힌 카드일 수도 있다

나를 도려내고 남은 나로
오늘을 살아간다

여전히 내 안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는 내가
나머지의 나머지로서의 내가

<감상> 감자의 싹을 자르면, 그 자리에 새로운 싹이 돋지 않는다. 몸은 상처를 입은 채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하나의 진실을 향해 가다가 무너지면, 새로운 계단이 눈 앞에 펼쳐지지 않는다. 자신의 치욕과 자탄과 어리석음을 싹이 잘린 감자처럼 껴안고 살아가야 한다. 스스로 자신의 치부를 도려내고 남은 나로, 예비하여 둔 스페어(spare)로, 쓸 수 있는 조커(joker)로 오늘을 대신해야 한다. 볼품없고 실패한 자신일지라도, 사회에서 도태된 나머지의 나머지로서의 내가 본질적인 나를 사랑해야 한다. 나를 사랑해야 남을 사랑할 수 있고, 남이 나를 사랑할 수 있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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