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숲 향기에 취하고 시원한 산바람 따라 무아지경에 이르다

수목원으로 들어서는 진입로가 훤히 뚫려있다.

폭염과 태풍이 정신을 못 차리게 하는 사이 신종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가 다시 확산 되어 전국이 들끓고 있는 8월의 마지막 주말, 사방을 둘러봐도 갈 곳이 없다. 외출자제에 외부인과의 만남 또한 제한하여야 할 정도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격상되어 혼돈의 연속이다. 그간 간간이 주변 근교산행을 함께해 온 지인들마저 연락이 없다. 다들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에 피해를 입혀서도 안 된다는 생각에 필자도 무턱대고 연락할 수도 없고 믿는 이, 내자(內子)뿐이라 함께 집을 나선다. 경북수목원에 들러 생태관찰로를 한 바퀴 돌아보고자 청하에서 상옥으로 가는 구불구불 경사진 도로를 따라 힘겹게 자동차를 몰아 경북수목원 주차장에 당도했다.

경상북도수목원을 알리는 표지석.

오랜만에 찾은 수목원 입구에서 내방객 체온과 인적사항을 일일이 체크하는 관계자들의 수고가 안쓰럽기만 하다. 주차장도 텅 비었고 가족단위로 나들이 나온 탐방객 몇몇이 수목원 안으로 들어간다. 따가운 한낮의 햇살이 짙은 녹음을 더욱 푸르게 하고 상큼한 숲 내음이 우리를 맞아준다. 산 아랫동네 번잡하고 암울한 일상하고는 사뭇 다른 딴 세상이 펼쳐지는 곳이다.

경북수목원 초입 광장에 심어놓은 반송과 그 아래 각가지 꽃들이 방문객을 반긴다.

들머리부터 숲 터널로 시원하게 반기고 광장에 서 있는 싱그러운 반송(盤松)의 기운과 곱게 핀 꽃들이 별천지에 온 것을 환영한다.

경상북도수목원이 조성된 것이 1996년 첫 시작으로 2001년 9월 처음으로 문을 열었으며 현재 넓이가 2,926ha(8백8십5만평)이나 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수목원이라고 알려져 있다. 경북지역에 분포하는 산림식물과 국내외의 중요 수목유전자원을 수집, 보존, 증식하고 식물자원화를 위한 학술적, 산업적 연구를 수행하면서 도민에게는 심신휴양과 자연체험교육장으로 제공되고 있다. 평균고도 650m의 고지대에 위치해 고산식물원, 울릉도식물원, 침엽수원등 24개 소원으로 구성되어 있고 숲해설전시관, 숲체험학습관, 숲생태관찰로와 희귀수종과 향토수종 등 자생식물위주로 2,088여종이 조성되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경북수목원은 볼거리가 많아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둘러보면 참으로 많은 식물과 나무들을 만날 수 있어 자연체험을 하기에는 최고의 적지가 아닐까 한다. 한적하고 조용한 가족나들이를 원하는 탐방객들이 크고 작은 관람구역을 돌아볼 수가 있고 어린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학습체험시설도 있어 자연생태를 배우는 훌륭한 곳이기도 하다.

수목원 생태관찰로와 등산로 안내판.

산행을 하는 산꾼들에게는 생태관찰로와 등산로가 따로 만들어져 여러 갈래 코스를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는 곳이라 전국의 애호가들이 사철 즐겨 찾는 산행지로도 소문이 나있다. 오랜 시간 산행하기에는 무리라 가벼운 생태관찰로를 따라 숲속을 헤매다 올 양으로 발길을 옮긴다. 관리사무소 건물 뒤로 난 매봉(833m)쪽 관찰로를 택해 산행을 시작한다. 이미 여러 차례 다녀본 길이라 낯설지 않은 산속을 걷는다. 생태관찰로와 등산로가 따로 표기되어 있어 길을 잘못들 일은 없다.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매봉을 지나 ‘꽃밭등’을 거쳐 내연산 최고봉 향로봉(930m)까지 갈수 있고 생태관찰로는 산허리를 돌고 돌아 삼거리를 거쳐 우척봉(775m) 갈림길에서 외솔배기쉼터와 삿갓봉(716m) 아래를 돌아 전망대까지 14.7㎞ 회귀 트레킹이 가능하고 5시간이면 충분히 돌아올 수 있는 코스가 조성되어 있다.

생태관찰로 들머리에 세워진 이정목.

업다운(up down)이 없는 평탄한 산길이 이어지고 간간이 쉼터가 있어 힘들지 않게 산을 즐길 수 있어 많은 산꾼들이 오는 곳이지만 요즈음처럼 험한 세상이라 그런지 산에도 사람이 드물게 보인다. 무성하게 자라난 떡갈나무가 유난히 많아 그늘진 산길이 시원하게 이어지고 지저귀는 풀벌레 소리까지도 정겹게 들릴 정도로 적막한 길을 둘이서 걷노라면 무아지경에 빠져 곁에 사람이 있는 줄도 모르고 가는 것 같다. 짙은 숲 향기에 취하고 시원한 산바람에 취하고 온통 자연 속으로 취객이 휘적거리며 걷는다.

생태관찰로와 등산로가 교차되는 지점에 놓인 구름다리.

산행 시작점에서 4.3㎞를 가면 제4쉼터가 나오고 곧이어 자그마한 구름다리 밑으로 야자매트를 깔아놓은 내리막길을 30분정도 따라 가다보면 ‘꽃밭등’이란 푯말이 나오고 지명에 대한 유래를 설명해 주고 있다.

오랜 예전에 병충해 등으로 큰 나무가 없어지면서 산등성이에 참꽃(진달래)이 만발하였다하여 ‘꽃밭등’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곳에서도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찾아볼 수 없고 참꽃도 점차 사라져 이름만 남아있다. 쉴 수 있는 평탄한 곳이라 산행 중 쉬어가는 산객에게는 편안한 장소로 알려져 있다. 꽃밭등을 지나 30분정도 더 가면 ‘삼거리’라는 이름의 내연골 원류지점에 닿는다. 매봉 쪽 물길과 우척봉과 삿갓봉 쪽 물길이 만나 시명리 쪽으로 흐르는 세 갈래 물길의 합수지점인 이 일대에 화전민마을이 있었고 경북수목원 관리사무소가 위치한 고개(샘재)를 넘어 내연산 깊숙한 산중에 화전을 일궈 살았던 시명리까지 가는 길목임을 알려준다.

삼미담 연못에 아름답게 핀 아리연꽃 모습.

깊은 골짜기의 계곡에서 흘러내린 물이 모여 지역최고의 명승지(名勝地)인 ‘내연골 12폭포’를 만들어 내는 발원지가 이곳 ‘삼거리’라 더욱 감회가 깊다. 맑고 차가운 계곡물과 함께 너른 개활지에서 뜨거운 여름을 식혀 본다. 관리사무소에서 삼거리까지 4.2㎞ 임도가 나있어 산행이 어려운 탐방객들이 더러 이용하기도 하지만 포장길이라 지루하고 힘들어 권할 만 하지는 않는다.

경북수목원이 만들어 지기 전(1995년) 이곳 삼거리일대에 자연휴양림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으로 임도를 내었으나 우리 산악인들의 강력한 반대와 송라면민들의 상수원 오염 등 환경파괴로 제동이 걸려 결국 무산되고 임도만 덩그렇게 남아 있는 아픈 기억이 있다. 당시 대통령공약사업이었는데 박기환 전 포항시장의 과감한 결단으로 자연휴양림조성사업을 포기하면서 경상북도수목원조성의 기틀을 잡아 오늘날 훌륭한 자연환경과 희귀수종 보존, 지역산림자원 활용, 도민휴양시설로 거듭나 전화위복의 기회가 된 것이 다행스럽다. 당시 산악계 주장을 대변했던 필자로써는 감개가 무량할 뿐이며 삼거리에 닿으면 늘 생각나는 것이 그때의 일이라 잠시 회상해본다.

삼거리 쉼터에서 맞은편 우척봉 가는길로 들어서면 조금은 가파른 경사지를 가게 된다. 계곡물 흐르는 소리와 곧게 뻗은 전나무 숲이 만든 아름다운 길을 올라 다시 우척봉 갈림길에서 오른쪽 삿갓봉 쪽으로 방향을 틀어 반듯하게 난 산길을 40여분 가다보면 ‘외솔배기’쉼터가 나온다. 수령 250년이 넘었다는 우람한 소나무 한그루가 반갑게 맞는다. 그 이름이 ‘외솔배기’다.

수목원 생태관찰로의 상징처럼 기세가 당당하다. 다시 삿갓봉 허리를 감싸며 도는 생태관찰로를 30여분 걸으며 지나온 산행을 되새김 할 즈음이면 눈 아래 수목원이 나오고 경사 진 데크 계단을 힘겹게 오르면 동해바다와 청하 들판이 훤히 보이는 전망대가 나온다. 사방을 조망 할 수 있는 누각에서 내연산 6봉(매봉, 향로봉, 삼지봉, 문수봉, 우척봉, 삿갓봉)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아름다운 수목원이 어서 오라 손짓한다.

전망대를 내려오면 울릉도식물원이 먼저 산객을 맞고 너른 수목원 관람지역을 돌아보는 호사를 누린다. 각종 희귀수종을 비롯한 생소한 이름을 단 꽃들이 반갑게 웃고 ‘산림이 미래다’라는 부제를 단 ‘삼미담(森未潭)’ 연못에 황혼에 힘 빠진 산이 독도와 함께 물속에서 대화를 한다. 아이들이 활기차게 뛰어놀 수 있는 잔디광장과 데크가 깔린 놀이터가 있어 온가족이 함께하는 자연 속 아름다운 수목원이 한 폭의 수채화가 되어 마음을 설레게 한다.

수목원 각 소원을 둘러보는데도 한나절은 족히 걸려야 하지만 제약된 시간이라 삼미담 연못에 피어오른 ‘아리연꽃’의 앙증맞은 노란꽃망울에 오늘의 숙제를 풀어 놓고 다시 본 경상북도수목원과의 아련한 추억을 접으며 ’걸어서 자연 속으로‘ 열두 번째 ’힐링 앤 트레킹‘ 이야기를 끝맺는다.

김유복 경북산악연맹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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