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준수 대구본부 취재부장.

상주시 공성면에 사는 박모(83) 할머니는 2015년 7월 14일 마을회관 냉장고에 있던 사이다에 고독성 살충제를 몰래 탔고, 이를 마신 2명의 할머니가 죽고 4명이 혼수상태에 빠졌다. 박 할머니는 국민참여재판을 원했다. 국내 최장기인 5일간 이어진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2016년 8월 29일 대법원도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2008년 2월 12일 대구지법에서 일반 국민 중에 뽑힌 배심원들이 피고인에 대한 유·무죄 여부와 양형에 직접 의견을 내는 ‘국민참여재판’이 시작됐다. 사법부의 상징인 재판의 권한을 국민과 나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상주 농약 사이다’ 사건을 심판했던 손봉기 대구지법원장은 “일반 시민의 눈으로 상식선에서 사건을 들여다본 배심원들의 양형과 법률전문가인 재판부의 의견이 거의 일치해서 놀라웠다”며 “집단지성의 희망을 봤다”고 했다.

미성년 제자 2명을 성폭행한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왕기춘(32)이 국민참여재판을 고집한다. 연애 감정으로 성 관계를 했을 뿐이라는 이유로 무죄를 주장한 그는 국민참여재판 배제 결정이 나자 즉시항고 했고, 즉시항고마저 기각되자 대법원의 판단을 받겠다며 재항고했다. 비난 여론이 거센데도 고집을 꺾지 않는다. 국민참여재판에서 다룬 성범죄 사건의 무죄율이 20%가 넘는다는 통계를 보면 일면 이해가 간다. 판사보다 피고인에게 더 관대한 배심원들에게 무죄를 호소해 보겠다는 심산이다.

국민참여재판이 통상 하루 동안만 진행돼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등을 따질 시간적 여유가 부족한 점을 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무작위로 뽑힌 배심원들의 성폭력에 대한 편견이나 통념에도 기대 볼 모양이다. 하지만 판사가 배심원들의 판단을 뒤집기도 한다. 만에 하나 왕기춘의 뜻대로 국민참여재판이 열린다면 집단지성의 힘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확인될 것이다.
 

배준수 대구본부 취재부장
배준수 기자 baepro@kyongbuk.com

법조, 건설 및 부동산, 의료, 유통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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