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의 세계는 언제부터인가
냉장고가 되어 있었다.
문을 열면
누가 뭐라고 해도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그녀의 날것들
냉장고 안에 가득 차 있다.

쉬지도 상하지도 않는 생이란 없는 것이련만
쉬어도 안 되고 상해도 안 되는
그녀의 세계는 늘 우리에게 공평했다.

냉장과 냉동이 분명하게
구분이 되는 세계를
언제부터인가 지닌 채
우리들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 그녀.

문을 열면 확하고 밀려오는 그 서늘함의
늘 푸르고 싱싱해야 된다는
꿈, 안으로, 안으로 여민 채
바닥에서부터 차오르는 오기의
마누라의 오늘, 그렇게 자리하고 있다.


<감상> 아내의 살림살이는 냉장고에 질서정연하게 쟁여져 있다. 냉장과 냉동이 확실히 구분되고, 상해도 쉬어도 되지 않는 냉장고는 아내의 신전이다. 가족을 위해 늘 공평무사하게 나눠주는 그녀는 푸르름의 교주다. 바닥에서 차오르는 그녀의 오기를 누가 막을 수 있으랴. 오로지 복종하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 냉장고 속에선 북극곰으로, 밖에선 당나귀로 떡 버티고 살다가 정작 본인은 시들어가는 줄도 모르는 그녀, 아내이자 어머니.<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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