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영 경남대 교수·정치학 박사
이재영 경남대 교수·정치학 박사

8월 25일 국회운영위원회에서 한바탕 소란이 있었다. 운영위원들이 “대통령님이” “대통령께서” 대통령님께서”라는 말로 시작해서, 경남 양산에서 농사를 어떻게 지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통령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들은 “대통령님께서 양산에 가셔서 …”라고 대답했다. 이에 김정재 의원이 국민의 대표 앞에서 지나친 존칭을 삼가라고 하면서 ‘대통령’으로 호칭할 것을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이에 김태년 운영위원장은 “습관이 돼서 하는 건데 뭐”라고 답변했다. 국민의 대표 앞에서, 대통령에 대한 청와대 구성원들의 극존칭을 어떻게 봐야 할까? 권위주의의 소산이지만, 관행이니 그냥 넘어가야 할까? 아니면 삼가야 할까?

존칭이라 일컫는 높임 말씨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통상적으로 높임 말씨라고 부르는 형태이다. 나이·위계·항렬 등에서 자신보다 상위에 있는 사람에게 사용한다. 중간에 ‘시’ ‘세’ ‘셔’가 들어간다. “하시었다” “하세요” “하셨다”와 같은 표현이다. 다른 하나는 사무적이나 군대식 말씨이다. 보통 직장이나 병영에서 상급자에게 사용한다. 말의 끝이 ‘다’ 혹은 ‘까?’로 끝난다. “했습니다” “했습니까?”와 같은 말이다. 높임말 사용에는 주의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문장의 주체와 청자의 관계이다. 문장의 주체가 청자보다 낮은 지위이면 높임말을 쓸 수 없고, 반대이면 높임말을 쓸 수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이를 압존법(壓尊法)이라고 한다.

전통적 압존법은 과도하게 경직되어 있다. 가정에서 할아버지에게 아버지에 대해 말할 때, “아버지 왔습니다”라고 해야 한다. 직원이 사장에게 부장에 대해 말할 때, “부장이 왔습니다”라고 해야 한다. 그러나 2011년 국립국어원에서 발표한 ‘표준언어예절’을 보면, 주체가 청자보다 낮더라도 높임말을 사용하는 어투를 인정한다. 그런데도 지위가 낮은 사람을 과도하게 높이는 것은 예절에 어긋나기 때문에 적절한 구사가 필요하다. 앞의 사례에서 보면 “아버지 오셨습니다” “부장님 오셨습니다” 정도가 적절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오셨습니다” “부장님께서 오셨습니다”와 같은 표현은 지위가 높은 청자에 대한 무례가 된다.

대통령을 지칭할 때 어떤 어법을 사용해야 할까? 대통령 자체가 극존칭이다. 통령(統領)은 최고 통치자를 의미한다. 나폴레옹이 제1통령으로 프랑스를 지배한 사례를 생각하면 된다. 여기에 대(大)자가 붙어 있으니, 대단한 존칭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공무원과 국민 모두 “대통령이…을 했다” 처럼, 그냥 대통령으로 칭해도 문제가 없다. 청와대 구성원이나 공무원에게 대통령은 직속 상관이므로, “대통령(님)께서 …을 지시하셨다”처럼 극존칭을 사용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청와대 구성원이나 공무원이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청와대 대변인이 브리핑에서 대통령을 지칭할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발언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우리나라는 선거를 통해 5년 동안 대통령에게 국가대표권과 행정권을 위임한다. 5년이 지나면 국민은 기존 대통령에게 부여했던 권한을 회수하여 다음 대통령에게 준다. 국민이 대통령보다 상위라는 의미다. 따라서 위에서 설정한 2가지 상황에서, “대통령이 …을 하였습니다”처럼 전통적 압존법을 사용하는 게 맞다. 물론 “대통령이 …을 하셨습니다”처럼 현대적 압존법을 사용해도 나무랄 수는 없다. 그러나 “대통령(님)께서 …을 하셨습니다”와 같이, 객체까지 높이는 어법은 국민에 대한 예의를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상태로 볼 수 있다.

존칭어를 사용하는 대상에게 얕보는 마음이 사라지고 함부로 행동하지 않게 된다. 극존칭어를 사용하는 대상에게 복종하는 마음과 행동이 생긴다. 국회가 대통령에게 극존칭어를 사용하면, 국회가 견제기능이 제대로 발휘할 수 없게 된다. 국민이 대통령에게 극존칭어를 사용하게 되면, 국민은 스스로 자신을 피치자로 인식하게 된다. “말이 행동과 마음을 지배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식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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