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규 문학평론가
한정규 문학평론가

사람의 행태는 사람 수만큼 다양하다. 큰 틀에서는 똑같아 보이지만 보다 자세히 보면 무엇이 달라도 다르다. 다양한 행태의 사람 중에 크게 보면 꼭 있어야 할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있으나 마나 한 사람,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 있다. 또 다른 행태로는 현명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리석은 사람이 있다.

현명한 사람은 꼭 있어야 할 사람으로 사람들이 고마워하는 것보다는 필요로 하는 사람이다. 예로부터 어리석은 자를 곁에 두지 말라고 했다. 속담에 친구를 보면 그 사람 됨됨이를 알 수 있다 했다. 끼리끼리 가까이 지내게 돼 있다.

어리석은 자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 또한 바보다. 어리석은 자를 가까이 두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다. 어리석은 자는 생각이 단순하고 욕심이 남다르다. 홍수로 범람한 하천물을 건너겠다고 뛰어들었다가 급류에 목숨을 잃는 자다.

노자는 남을 이해할 수 있는 자를 지자요, 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자를 현명한 자라 했다. 다시 말해 우둔한 자는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 줄 모른다. 그리고 자신이 하는 것이 모두 옳다고 생각한다. 그런 우둔한 자에게 현명한 자는 도움이 안 되지만 우둔한 자는 현명한 자에게 크게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 말은 현명한 자는 우둔한 자의 행태를 보고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하고 깨닫기도 한다. 또한 현명한 사람은 순간의 이익을 얻기 위해 사리사욕을 위해 간신 짓, 역적 짓을 하지 않는다.

우리의 지난 역사만 보아도 율곡이나 최치원 같은 현명한 사람은 자신에게 돌아올 줄도 모르는 불이익보다는 국가를 걱정하고 왕에게 충언을 올렸다.

1583년 조선 선조 때 율곡 이이는 함경도를 침공한 여진족을 물리친 뒤 앞으로 10년 내에 나라가 무너지는 큰 화가 있을 거라 하며 10만 명 양병 설을 담은 상소문을 올렸다. 그 상소문을 올린 그 후 정확히 10년 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또 신라시대 최치원도 진성여왕에게 사회를 비판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그런 현명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원균과 같이 전쟁 중에 자신의 입지를 넓히기 위해 이순신 장군을 모함하는 어리석은 사람도 있다. 또 수십 년 전 많은 사람들의 논의를 거쳐 정리된 사실을 가지고 주어진 직위를 이용 개인감정에 매몰 왜곡 부정하는 의견을 주장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행위를 일삼는 사람들이 있다.

현명치 못한 어리석은 자는 그러면서 현명한 사람을 되래 어리석다고 비난한다. 그런 짓 하는 것 어리석은 자의 특징이다. 불공평을 공평으로, 부당을 정당으로, 불법을 합법으로, 그러면서 선량한 약자를 선동 현명한 자를 몰아세운다. 그것이 현명한자와 어리석은자의 다른 점이다.

권력가나 재력가 주변에는 반드시 어리석은 자가 있기 마련이다. 그 어리석은 자만을 탓할 순 없다. 어리석은 자에 꼬여 놀아나는 사람이 문제다. 하지만 모두를 위해 권력의 주변 또는 재력가의 주변에서 얼씬거리지 못하게,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해야 모두의 삶이 보다 행복해진다. 그건 오직 권력가, 재력가만의 몫이다.

일례로 쥐는 본시 두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 그게 정상이다. 그런데 변이 종으로 눈이 하나인 쥐 열 마리가 있는 그 가운데 두 개의 눈을 가진 쥐 한 마리가 있다면 눈 하나인 쥐들이 눈 두 개를 가진 쥐를 비정상이라 할 것이다.

그렇듯 비정상이 정상처럼 정상이 비정상처럼 그런 세태 마치 지금의 한국사회가 그렇다고 보면 어떨까? 누군가 그렇게 말을 한다면 그 사람을 현명한 사람 아니면 어리석은 사람, 그 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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