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태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원태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1847년 4월,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터진 반유대주의 폭동의 주동자들이 데이비드 파시피코(David Pacifico)라는 유대인의 자택에 침입하여 귀중품을 약탈하고 방화(放火)하였다. 파시피코는 자신이 입은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을 그리스 정부에게 청구하였으나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이에 영국령 지브롤터 출신이었던 파시피코는 자신이 영국 시민임을 주장하며 영국 정부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외국 정부가 자국민을 이렇듯 무시하는 것을 좌시할 수 없었던 파머스턴(Palmerston) 영국 외무장관은 그리스 정부의 제대로 된 배상을 요구하며 1850년 1월, 전함 14척과 해군 8,000여 명으로 구성된 대규모 함대를 파견하여 아테네의 외항(外港)인 피레우스(Piraeus)를 봉쇄하였다. 당시 세계 최대 제국을 지키던 영국 해군의 위력에 맞설 힘이 없었던 그리스 정부는 피레우스가 봉쇄된 지 두 달 만에 배상금 지급을 결정하였다. 이러한 파머스턴의 극단적 ‘오버 행위’에 대해 영국 의회에서는 파머스턴의 견책(譴責) 여부를 두고 격렬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이때 파머스턴은 ‘고대 로마제국 시민이 “나는 로마 시민이다(Civis Romanus sum)”라는 말만 함으로써 그 어디에서라도 자신의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었듯이, 영국 국민 또한 세상 그 어디에 있더라도 영국 정부가 불의와 부정으로부터 그를 강력하게 보호해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라고 열변함으로써 영국 국민과 영국의 이해 관계를 최우선에 둔 그의 외교 정책이 근본적으로 정당함을 소명하였다.

물론 21세기의 뉴질랜드는 19세기의 영국과 같은 위력을 과시하지 못한다. 하지만 한국 외교관의 성추행으로 심각한 정신적 피해를 입은 자국민의 구제를 위해 지난 7월 28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수사 협조를 요청한 저신다 아던(Jacinda Ardern) 뉴질랜드 총리의 의지만큼은 파머스턴 못지않아 보인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인정했듯이 지난 3년 동안 이 사안을 질질 끈 외교부의 대응은 대단히 미흡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교부 장관과 집권여당은 우리 측의 잘못을 인정하는 데에는 인색하였고, 뉴질랜드가 ‘외교적 결례’를 범했고 ‘선을 넘었다’는 프레임을 짜기에만 몰두하였다. 특히 정상 간의 대화에서 ‘의제가 되지 않아야 할 게 의제가 된 데에 대해서는 뉴질랜드의 책임이 크다’라는 외교부 장관의 발언의 진의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 문제가 왜 의제가 되지 않았어야 했다는 것일까. 정상 간 대화의 의제로는 대규모 비즈니스 협약 체결, 한반도 정세 변화 논의 등의 ‘거시적’ 아젠다 만이 적합하다는 뜻인가. 국민 개개인이 당한 피해와 억울함 따위는 정상들이 논의할 만한 사항이 아니라는 것인가. 혹 사전에 조율되지 않았기 때문에 의제가 되지 않았어야 했다는 뜻이라면, 뉴질랜드 측이 사전에 의제로 제안했다고 한들 과연 우리 측에서 순순히 받아들였을까. ‘불편한 위치에 계시게 된’ 대통령에게만 죄송하다고 말할 정도로 평소 청와대 눈치만 보기 바쁜 외교부 장관의 스타일로 보아, 문 대통령과 이 문제를 직접 논의하기 위해서는 ‘기습(奇襲)’하는 방법밖에 없었다고 뉴질랜드 측에서 판단했던 것은 아닐까.

2008년에 미국 지명위원회가 독도를 ‘주권미지정 지역’으로 만들려고 하자, 당시 주미대사가 한·미 상공인 행사에서 연설한 뒤 퇴장하는 조지 부시(George W. Bush) 대통령을 쫓아가 경호원들의 제지를 당하면서 ‘우리 두 국가 간에 엄중한 사안이 있습니다’라고 대통령 뒤통수에 대고 소리치는 심각한 ‘외교적 결례’를 범했다. 그러나 부시는 고개를 돌려 주미대사와 국무장관이 이에 대해 논의할 것을 지시하였고, 결국 이로 인해 독도를 한국 땅으로 바로잡는 데에 성공할 수 있었다. 3년 동안 지속된 자국민의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외교적 결례’를 범한 뉴질랜드를 탓하기만 할 수는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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