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윤 케인 변호사
하윤 케인 변호사

까르띠에는 보석, 시계 등을 제작하는 프랑스 명품 브랜드다. 귀금속 세공을 하던 루이-프랑수아 까르띠에가 1847년에 스승의 공방을 인수한 후 자신의 이름인 ‘까르띠에’로 간판을 바꾼 것이 현재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브랜드의 시초가 되었다.

까르띠에는 1850년대 유럽 왕족들의 눈에 띄며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다. 1856년 나폴레옹 3세의 사촌인 마틸드 공주가 까르띠에 브로치를 구입하였으며 1960년에는 외제니 황후가 각종 보석을 주문하며 왕실과 인연을 쌓았다. 에드워드 7세는 까르띠에를 ‘왕의 보석상이자, 보석상의 왕(Jeweler to Kings, King o Jewelers)’라고 칭하던 까르띠에의 열혈 팬이었다.

창업자 루이-프랑수아 까르띠에 이후 아들과 손자로 대를 이은 가족 사업이 되었으며 1900년대 초반 창업자의 손자들인 루이, 피에르, 자끄 까르띠에가 경영에 참가하며 보다 대중적인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제 1차 세계대전 중 탱크에서 영감을 받은 탱크 워치, 비행사 친구의 필요성에 의해 탄생한 첫 남성 손목시계인 산토스가 이 시기에 탄생했다.

까르띠에에서 가장 유명한 상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러브 팔찌는 1969년에 만들어졌다. C자 모양의 두 파트를 나사로 고정하는 형태의 팔찌는 출시 초기에는 커플에게만 판매되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 소피아 로렌 등 탑 셀러브리티의 사랑을 받은 팔찌는 수 십 년이 지난 현재에도 변함없는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러브 팔찌 디자인은 귀걸이, 목걸이에도 등장하며 까르띠에는 해당 디자인뿐 아니라 상표권도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탱크, 산토스 등 여러 제품 이름과 달리 ‘러브’ 라인은 상표 관리에 여러 난관에 부딪혔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보석 시장에서 너무 널리 쓰이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2014년에는 미국에서 세계금협회(the World Gold Council)과 상표 분쟁에 얽혔다. 협회는 보석, 마케팅, 홍보 등의 분야에 ‘LoveGold’라는 이름으로 미국 상표청에 상표 신청서를 제출했는데, 까르띠에 측에서 자사의 ‘러브’ 상표와 충돌한다며 러브골드 상표등록에 이의 제기를 한 것이다. 양측의 협의 하에 러브골드는 보석 상표로 등록에 성공한다. 상표등록 신청서를 제출한 후 6년 만의 등록이었다.

2019년에는 싱가폴에서 상표 분쟁이 있었다. 머니맥스(MoneyMax)라는 동남아시아 프랜차이즈 보석상이 싱가폴 상표청에 ‘Love Gold’라는 슬로건을 등록하려고 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머니맥스는 해당 문구를 자사 브랜드에 새기고 이를 각종 마케팅에 사용하려고 했다. 까르띠에는 머니맥스의 슬로건이 러브 팔찌 콜렉션과 너무 비슷하다며 신청서가 취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싱가폴 상표청은 ‘Love’란 보석 판매에 흔히 사용되는 단어이기 때문에 특정 업체에 ‘사랑’이란 단어의 독점권을 줄 수는 없다고 밝혔다. 보석 업계에서는 누구든 ‘사랑’이란 단어로 상표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사랑과 낭만을 판매하는 보석 업계 전체를 보면 일리 있는 판단이다. 결국 까르띠에는 머니맥스의 상표 등록을 막을 수 없었다.

‘사랑’을 독점하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까르띠에가 디자인 자체에 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러브 팔찌 디자인은 여러 나라에 등록되어 있는 까르띠에가 독점권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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