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어디서 무엇이, 어떤 심장이, 흐느끼는 얼굴이, 허우적거리
는 팔다리가 내게로 왔던 건지

그 물길 내게로 왔을 때, 누가 수건으로 어깨를 툭 치는 것 같았는데,
발걸음을 옮길수록 아랫배에 피가 배어나오듯, 비로소 섬뜩했던 칼날이
생각나듯이

그때서야 내 몸이 소스라치듯 깨어났을 때, 누가 내 이름을 불렀던가
나는 누구의 자식이며 형제이며 어버이였던가

강기슭엔 풀과 흙과 나무밖에 없었는데

백수광부의 술병을 탐냈던 건 아니야, 죄도 용서도 구원도 없는 세상
이니, 시퍼런 물살을 몸에 감고자 했던가 그 물길, 칼로 채찍으로 삽날
로 쳐낼 수 없었어

물밑의 돌들, 몸서리치게 아름다웠어
물풀은 물밑에서 아우성치듯 흘러갔고

어디서 무엇이, 어느 물결이, 모래가, 창고의 판자 조각이, 누구의 관
뚜껑이 나를 등에 업고 저 물길을 건너온 것인지


<감상> 물은 만물의 생명이니, 인간의 삶에도 존재의 의미를 부여해 준다. 시인은 물길을 건너는 풍경 속에서 자신의 운명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것 같다. 내가 어디서 온 것인지, 수건으로 어깨를 툭 치듯 어떤 인연으로 여기 있는지를. 도대체 혈육의 관계는 어떻게 맺어진 것이기에 운명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는지를. 애초에 죄도 용서도 구원도 없는 세상이니, 아무리 몸부림쳐도 정해진 대로 흐르는 물길을 거스를 수가 없다. 그냥 인생은 아름다웠다고 말을 해야 하나. 누구의 죽음으로 내가 태어난 것인지 지금도 알 수 없고, 앞으로도 알 수 없다. 다만 순리에 따를 뿐이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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