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혁 학강미술관장
김진혁 학강미술관장

무더운 여름이 지나갔다. 고미술의 야담과 관련한 글을 연속 적어본다. 1990년 대 초, 저녁이면 가끔 들리는 화랑이 있었다. 오후 6시가 되면 몇몇 사람이 모여서 가벼운 술 한 잔의 시간을 자주 가졌다. 수장가, 거간상, 기업인, 미술가 등 여러 직종의 인사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었다.

어느 날 대구 출신으로 서울의 유명한 원로화가에 대한 전설 같은 얘기를 들었다. 이 노화백은 고미술품 수집 중에서도 특별히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우리나라 석물에 유별난 사랑을 가졌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아는 전국의 거간상들은 오래된 화강암으로 된 석물이 나오면 노화백에게 달려가 후한 값을 받았다고 한다. 점점 소문이 나자 많은 거간상들이 오래되고 귀한 석물이 나오면 마음씨 후한 노화백에게 공급하였다.

얼마 후 시간이 지나 몇몇 거간상들이 모여 노화백이 제작한 값비싼 그림들을 빼내기 위해 공모를 하였다고 한다. 먼저 화강석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위작 불상을 만들었다. 오래된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하여 이끼도 붙이고 돌꽃도 피게 하여 자연스레 옛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그리곤 만들어진 석불을 경주로 가져가 남산자락의 후미진 곳에 땅을 파고 묻었다고 한다.

중앙아시아 석조물 학강미술관 수장품

몇 달 후 노화백에게 연락하여 경주남산 인근에서 석불이 발견되어 땅속에 묻힌 석불 중 머리 위쪽만 조금 볼 수 있다고 하였다. 하여 아주 중요한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보물급이라고 전하였다.

“선생님. 굉장한 소식이 있습니다. 며칠 전 경주 남산 자락에 오랜 장마 후 신라석불 비슷한 것이 발견되어 우리 몇 사람만 알고 경주시에 신고 없이 바로 선생님께 달려왔습니다. 감쪽같이 다시 땅에 묻어버리고 쥐도 새도 모르게 제일 먼저 선생님께 상의드립니다”

“와, 그래요? 난 진짜 우리나라, 특히 신라시대 석물을 너무 사랑합니다만 당장에 구입할 돈은 없는데….” “선생님의 그림으로 대신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요 그럼, 경주 현장으로 가서 확인해봅시다.”

그 얘기를 마치자마자 노화백은 경주 남산자락으로 달려가 현장을 목격하였다. 그 날은 비가 오는 여름이라 산속 계곡에 묻힌 석불머리 쪽만 본 그는 자신의 그림 10여 점을 줄 테니 파내어 서울로 가져오라 하였다. 거간상들이 꾸민 계략에 너무나 순수한 노화백은 속아 넘어가고 만 것이다. 그 후 석불은 노화백의 화실 정원으로 갔고 그들은 유명작가인 그의 그림을 여러 점 가져와 팔고선 돈을 나누어 가졌다 한다. 영화 <인사동 스캔들>과 같은 귀신이 곡할 얘기였다.

역시 고미술을 사랑하는 필자는 다양한 거간상들을 만나보면서 이러한 야담을 자주 듣게 된다. 이 당시 거의 매일 참석한 미디어 예술가인 박현기 작가는 언젠가 이러한 구전의 스토리를 잘 정리하여 책으로 출판해 보라고 필자에게 권하였다.

세월이 흘렀다. 가물한 기억 속에서 여러 가지 조심스러운 내용을 꺼내본다. 노화백도 벌써 돌아가셨고 거간상들도 대다수 이 땅의 사람들이 아니기에 가을의 초입에 스케치하듯 글을 써내러 간다. 고미술을 너무나 사랑하는 전문 콜렉터들은 고서화나 도자기로 시작하는 수장시기를 지나면 금속공예품이나 석물 그리고 민예품에 빠져야 전문적인 수장가가 된다고 한다. 그중 고대 그리스 로마의 조각기술이 중앙아시아와 인도 간다라 지방을 거쳐 중국에 전파되고, 다시 동쪽 끝의 신라왕국에 와서 그 품격의 절정이 불상석조물로 탄생되었다. 미술사가들도 경주의 토함산 석굴암이나 남산의 석불을 보면 화엄의 극락세계가 바로 신라 땅에서 완성된 것을 볼 수 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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