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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트레킹] 13. 청량산성길
[힐링&트레킹] 13. 청량산성길
  • 김유복 경북산악연맹회장
  • 승인 2020년 09월 17일 19시 44분
  • 지면게재일 2020년 09월 18일 금요일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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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봉우리 하나하나 선계에 있을 법해…
축융봉에서 청량산 최고봉인 장인봉(870m. 왼쪽)과 까마득한 하늘다리가 보인다.

올 여름은 유난히도 험난한 일상이 되풀이되어 모두를 힘들게 한다.

지루한 장마와 폭염에 시달리다 연거푼 태풍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9개월째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일상에 날씨마저 마음을 아프게 한다. 생활 속 거리두기가 장기간 연장되면서 언택트(untact:비대면) 관광지로 주목받는 청정지역 숲길과 산성(山城), 그리고 ‘영남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기암괴석의 봉우리들과 아름다운 절경으로 이름난 명승지 청량산에 있는 ‘청량산성길’을 지난해 6월에 다녀 온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포항에서 청량산(870m)으로 가는 길은 영덕. 상주간 고속도로를 타고 동청송IC에서 영양방향으로 가는 도로를 타고 청량산도립공원 ‘입석’ 주차장까지 자동차로 2시간30분정도 걸린다. 고속도가 생기면서 시간이 단축되어 접근하기가 훨씬 수월해진 셈이다. 봉화군 명호면 북곡리에 위치한 청량산(淸凉山. 870m)은 봉우리마다 수려한 기암괴석과 함께 낙동강 상류에 빼어난 계곡을 품고 있는 청정자연 그 자체다.

1982년 경북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2007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23호로 선정되는 등 수려한 경관과 역사적 가치 또한 인정받고 있은 곳이다.

예부터 빼어난 경관에 선현(先賢)들의 경탄이 이어져 왔고 지금도 옛 발자취가 생생하게 남아 있는 곳으로 조선조 최고의 유학자인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청량산의 수려함에 빠져 자신의 호를 ‘청량산인(淸凉山人)’이라고 칭할 정도로 ‘퇴계가 사랑한 산’으로 널리 알려진 산이다.

‘육육봉(六六奉)’이라 하여 열 두 봉우리 하나하나가 선계(仙界)에나 있을법한 산들이라 글로 다 표할 수 없을 만큼 빼어난 곳이다.

최고봉인 장인봉을 비롯한 선학봉, 자란봉, 연화봉, 향로봉, 연적봉, 탁필봉, 자소봉, 금탑봉, 경일봉, 탁립봉, 축융봉까지 열 두 봉우리와 신라 문무왕3년(663년) 원효대사가 세웠다는 청량사를 비롯한 최치원의 유적지 고운대, 명필 김생이 서도를 닦았다는 김생굴과 공민왕이 쌓은 산성(山城) 등 역사적 발자취가 늘려 있고 2008년 준공된 해발800m에 길이 90m인 하늘다리까지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는 경관이 경북 최북단 봉화군에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청량산에 산성이 축조된 유래는 오래된 역사가 말해준다. 삼국시대 신라와 고구려의 경계로 영토분쟁이 잦았던 곳으로 산 전체가 험준한 바위산으로 구성된 천연적인 바위절벽이 군사적 요새로써의 특성을 갖춰 있어 산성이 만들어졌다는 역사적 설명이 이해가 된다.

경일봉과 선학봉, 청량사 계곡 옆으로 형성된 ‘청량산성’과 현존하는 동문지, 밀성대(密城臺)를 지나 축융봉을 이은 ‘공민왕산성’, 축융봉과 경일봉을 잇는 오마대로(五馬大路)가 만든 ‘오마산성’ 등 청량산 전체를 산성화 했으며 돌과 흙을 함께 사용한 토석혼성 형태로 골짜기를 이어 축조한 포곡식(包谷式)산성으로 특색 있는 성이 이뤄졌으나 현재는 고려 공민왕이 2차 홍건적의 난을 피해 몽진와서 쌓았고 조선 선조때 보수한 동문지와 밀성대, 축융봉을 잇는 공민왕산성만이 남아 ‘청량산성’으로 일컬어지고 있다고 한다.

청량산 탐방 안내도.

영양 쪽에서 오마도터널을 지나 청량산 입구인 입석 쪽으로 들어가다 나오는 산성입구 주차장에 차를 대고 산성으로 오르는 임도를 따라 우거진 숲길을 걷는다. 산성길을 걷는 코스가 두 갈래로 나눠진다. 임도를 타고 가다 ‘공민왕당’을 거쳐 축융봉 밑까지 가는 길과 산성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난 산성 오르는 계단길로 빠져 밀성대 쪽으로 올라 산성을 따라 축융봉까지 가는 길이 또 하나 있다.

짙은 숲길과 파란 하늘, 흰 구름이 힘 든 산객을 응원하는 산 속 모습.

지난해 6월에 필자가 간 코스는 임도와 공민왕당을 거쳐 축융봉을 올랐다 산성을 타고 밀성대로 내려와 다시 동문지까지 산성길을 걸어 내려오는 회귀 트레킹을 했다. 6월이라고는 했지만 한여름의 뙤약볕이 무섭게 내리쬐는 날씨라 임도로 오르는 일이 여간 고생이 아니었다. 쉬엄쉬엄 오르긴 해도 땀이 비오듯하고 그나마 시원한 산바람에 위안을 삼으며 1시간 가까이를 걸어 공민왕당에 닿았다.

고려 공민왕이 제2차 홍건적의 난(공민왕 10년, 1361년)을 피해 청량산에 산성을 쌓고 머물다 환도 한 후 비운의 죽음을 맞자 산성마을 주민들이 동신(洞神)으로 모시며 사당을 지어 매년 제(祭)를 올리게 된 것에 유래되었으며 훼손된 공민왕당을 2007년 봉화군에서 원형에 가깝게 복원 하였다는 공민왕당에는 공민왕신을 모신 광감전(曠感殿)이 있고 위패가 봉인되어 있다. 조그마한 뜨락이 있는 공민왕당에서 더위를 식히며 옛 고구려 개혁에 앞장서다 비운에 간 공민왕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

공민왕당과 밀성대, 축융봉 갈림길 이정목.

공민왕당을 되돌아 나와 축융봉으로 향한다. 숲속의 오르막을 힘겹게 오르니 사위가 트이고 축융봉 정상으로 오르는 계단에 닿는다. 아무도 없는 탁 트인 축융봉(祝融峯, 845m)정상에 오르니 청량산 수려한 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우선 시원하다 . 사방을 돌아봐도 막힘이 없다. 청량산 육육봉이 눈높이를 같이 하고 장인봉과 자란봉을 잇는 하늘다리가 하늘에 걸려 있다. 준공당시에는 전국에서 가장 긴 산악 현수교였다는 하늘다리가 보기만 해도 현기증을 느끼게 한다. 해발 고도가 800m나 된다니 아찔할만하다. 청량산 품속에 싸인 청량사가 깊숙이 자리하고 있고 금탑봉 아래 응진전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보인다. 왼쪽 학소대 절벽 아래로 낙동강이 굽이쳐 흐르고 오른쪽 탁립봉 아래로 그 옛날 다섯 마리의 말이 나란히 달릴 수 있는 길이라 하여 ‘오마대로(五馬大路)’의 큰길이 저만큼 있는듯하다.

임도로 힘겹게 오르는 일행 뒤로 푸르름이 더욱 짙어 보인다.

시원한 산정에서 일행들이 마음껏 청량산을 들이키고 있다. 이름 그대로 청량(淸凉)한 산에서 선인(仙人)의 경지를 느끼고자 심호흡을 해본다.

‘퇴계가 사랑한 산’이 저만치 나와 함께 하니 나 또한 퇴계가 된 기분이다. 내려가기 싫은 축융봉을 뒤로 하고 흙으로 만든 토성을 지나 제대로 된 산성 돌길을 걷는다. 반듯하게 정비된 산성길을 내려서니 밀성대가 나온다. 축융봉에서 밀성대까지 가는 산성길은 청량산을 지속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길이라 청량산성길 트레킹의 최고의 하이라이트가 된다.

육각정자로 청량산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밀성대에는 숨은 얘기가 있다.

산성(공민왕산성)을 쌓고 군사훈련을 할 당시 명령을 어긴 죄인을 절벽 끝에서 밀어 처형했다는 슬픈 전설이 남아 있는 곳에 정자가 있다. 밀성대에서 보는 청량산 조망이 또 다른 볼거리로 다가오고 멀리 영양 쪽에서 넘어오는 오마도터널에 그 옛날 오마대로를 달리던 말들의 힘찬 발굽소리가 들리는 듯 청량산을 휘감고 간다.

높이 870m인 청량산에는 절경의 육육봉(12봉우리)과 함께 어풍대(禦風臺), 신선대(神仙臺)등 신묘한 절승지와 청량폭포가 한 폭의 산수화 풍광을 뽐내고 신라 때 원효대사가 건립한 천년고찰 청량사(淸凉寺)와 퇴계가 거처하며 학문을 연구하던 자리에 세운 청량정사(靑凉精舍)가 아직도 남아 있다.

청량산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천년고찰 청량사 모습.

청량산성길을 돌아내려와 청량사에 올라 맞은편 산성길과 축융봉을 조망하는 것도 의미 있는 탐방이 된다. 절묘한 오층석탑을 돌아보고 공민왕 친필 현판이 있는 법당 유리보전 앞에서 다시 한 번 공민왕과 얽힌 역사를 되새겨 보며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이란 아름다운 이름의 사찰 찻집에서 은은한 차 한 잔으로 산사의 낭만을 즐겨 보는 여유도 좋을 듯하다.

청량산신(淸凉山神)이 된 공민왕의 기(氣)가 수려한 열 두 봉우리에 서려있는 청량산과 청량사 절집을 뒤로 하고 낙동강 물줄기를 따라 옛 선현들이 거닐던 안동 ‘도산구곡 예던길’ 초입 가송리에 있는 농암종택(聾巖宗宅)에 들러 고즈넉한 고택의 고요한 정취에 초여름의 뜨거움을 묻고 청량선계(淸凉仙界)를 떠나 속세로 들면서 산성에서 맞이한 절경과 시원한 산바람에 흩날리던 건강한 웃음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듯하다. 지난해의 ‘청량산성길’ 이야기로 ‘걸어서 자연 속으로’ 떠난 열세 번째 스토리를 마무리한다. 

글·사진=김유복 경북산악연맹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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