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아름답게 태어난 나는
서사성 짙은 기록을 남기기 위해 밤잠을 거른다
쓰고 지우고 다시 쓴 글
높새바람에게 던져주고 남은 날숨을 구름옥상 위에
방치한다
까막까치가 날아와서 불순물 섞인 운문을
쪼아먹으리
역사상 가장 힘들게 고고한 자태로 버텨야 하는
나는
내가 나를 치료하는 방법으로
연필심에 침을 바른다
<감상>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쇠똥구리처럼 삶을 둥글게 굴리면서 기록으로 남기는 사람을 무시하지 말자. 시(詩)가 나를 이끌어 온 것인지, 내가 시를 이끌고 온 것인지 잘 모르겠으나 나를 치료해 준 건 분명하다. 흔히들 자신의 삶을 소설로 쓰면 열권은 넘는다고 말하면서 한 줄도 쓰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 고등학교 때 평생 국어를 가르친 선생님이 열두 분이 계셨는데, 한 권의 책을 출간하기는커녕 등단한 분조차 없었다. 세계를 일주하고서도 풍경에 대한 감흥을 한 줄도 쓰지 못하고 영구차 타고 직장 한 바퀴 돌고 떠난다. 지금도 늦지 않으니 비망록을 한번 써보자. 쓰고 쓴 글을 정화시키기 위해 오늘도 연필심에 침을 바르는 이들이 있다. 기록되지 않는 삶은 사라지기 때문에. <시인 손창기>
- 기자명 김영찬
- 승인 2020.09.20 16:16
- 지면게재일 2020년 09월 21일 월요일
- 지면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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