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완 칼럼니스트
김동완 칼럼니스트

나는 나이 90살을 바라보는 늙은이다. 뼈대 있는 집안 자손이다. 조국 같은 학자도, 나경원 같은 정치인도 이재용처럼 내세울 부자도 없지만, 줄줄이 왕을 배출한 2000년 뿌리 깊은 왕가의 왕손이다. 김유신과 무열왕, 원효, 최치원, 설총이 살던 고장에 대대로 살고 있으니 그것도 늙은이에게는 마음 한쪽 비빌 언덕이다. 조선시대에는 부윤이 다스리던 고장이다. 보고 듣고 익힌 법도가 현감이 사또하던 고장하고 격이 다르다. 보고 듣고 익힌 것이 대를 이은 자부심이 됐다.

자부심은 태어난 땅의 역사와 족통 말고도 조상을 모시는 범절에 있다. 5대봉친하는 집안 추석 벌초에 지금도 일가친척 30여 명이 참가한다. 예전에는 이보다 2배는 더 모여 조상 섬기는 일을 소중하게 여겼다. 봉제사에도 빈틈이 없었고 집안 대소사 어느 것 하나 격식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일제 때도 그랬고 6·25 전쟁 때도 생명줄처럼 지켰던 범절이다.

역병이 세상을 바꿔 놓았다. 문중 벌초가 없어졌다. 올해는 각자 직계 윗대의 산소만 감당하기로 했다. 아들은 제 어미와 조부모님 산소만 벌초하겠다고 했다. 내게는 아내와 부모님이다. 그 위로는 묵히기로 했다. 조부모님 손에 자랐던 나는 그 어른들 산소까지 묵힌다는 말에 눈물이 쏟아질 뻔 했다. 한마디 했다가 조카의 핀잔을 들었다. “아재요, 올해 벌초했던 사람이 내년에는 벌초 당할 지도 모릅니다.”

최근 한국국학진흥원이 조선 시대에도 역병이 돌면 기제사와 차례를 지내지 않았던 사례를 모아 발표했다. 세상이 살기 어려워지면 제 살길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이다. 추석 연휴가 죽을 고비가 되지 않으려면 흩어져서 벌초하고 차례를 지내는 ‘각자도초(各自圖草) ’와 ‘각자도례(各自圖禮)’를 해야 한다. 범절도 지탱하던 집안의 자부심이다. 범절은 무너지고 뼈대 있는 집안의 자부심도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하다. 조상님들 뵐 낯이 없다. 그래도 살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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