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홑청을 툭 털 듯
느닷없이 출렁거리는 하늘

먹물이 든다

물든다는 것,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날개들의 소란이다

부드럽게 혹은 격렬하게,

저희끼리 번지고
그 번짐 닦으며 가는 새떼들


<감상> 철새 중에서도 의리가 깊은 기러기를 배울 일이다. 기러기 떼가 날아가면 하늘이 출렁거린다. 반드시 고개 들어 기러기의 편대를 보라.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다투는 일이 없다. V자형 대형을 이루며 파수꾼을 자청(自請)한다. 서로 배려하고 희생하는 정신이 번져 온 하늘을 물들인다. 격려하는 소리와 날개들의 소란이 모여 수만 키로미터를 비행케 한다. 그 번짐을 닦으며 가는 행위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의미도 된다. 한 마리 새도 낙오 없이 목적지에 도달하는 부드러움과 격렬함을 갖춘 날개여! 우리 인간들에게는 적용될 수 없는 것인가. 서로 협력하기는커녕 강자는 약자를 짓밟고 착취하지 않는가. 몇천 년 전에도, 몇천 년 후에도.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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